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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배지를 모으기 위해 올림픽 현장을 14번 찾았다는 '핀 트레이더' 다니엘 프레스버거. 정아람 기자
특히, 배지를 수집하기 위해서 먼 나라에서 날라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핀 트레이더(Pin Trader)'라고 합니다. 핀 트레이더를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들은 머플러나 옷 앞섶에 주렁주렁 배지를 달고 있으니까요. 추운 날씨에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핀 트레이더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경기장 근처를 서성입니다.
배지 교환은 시도 때도 없이 이뤄집니다. 배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면 교환은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교환이 성사되는 건 아닙니다. 서로 마음에 드는 배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간단한 인사말이 오가고, 서로 배지에 대한 칭찬도 이어집니다. 배지는 새로운 인연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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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를 교환하기 위해 관광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니엘 프레스버거. 정아람 기자
다니엘 프레스버거(Daniel Presburger·53)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핀 트레이더입니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 배지를 모으고 있고, 평창 겨울올림픽은 14번째 올림픽이라고 합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23회 하계 올림픽에서 우연히 배지를 모으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하네요.
다니엘은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매일 나와서 배지를 모을 계획"이라며 "한국 관련 아이템은 400~500개를 모았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배지는 몇십만개에 달한다고 해요. 이처럼 열심히 배지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배지를 모으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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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에서 평창을 찾은 마크 체스트넛.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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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봉사자들과 배지를 교환하고 있는 마크 체스트넛. 정아람 기자
이처럼 강릉올림픽파크에서는 핀 트레이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강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핀 트레이더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강릉이 평창보다 따듯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평창에 먼저 터를 잡았다가 추위에 혼쭐나서 강릉으로 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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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배지를 자랑하고 있는 론 이즈벨. 1988년부터 배지 모으기를 시작했다. 정아람 기자
핀 트레이더를 중심으로 올림픽 현장에선 배지를 교환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습니다. 명찰에 여러 개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자원봉사자, 선수, 행사 관계자 등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배지 나눔 문화가 확산하면서, 올림픽 기념품 매장에서 배지 매출도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경기 관람 등을 위해 올림픽 현장을 찾을 일이 있다면, 집에 있는 배지를 몇 개 들고 와서 핀 트레이더와 교환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눈에는 쓸모없어 보여도 핀 트레이더들에겐 특별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핀 트레이더들은 각국의 문화가 녹아 있는 배지일수록 가치를 높게 치거든요. 이들과 배지를 나누는 짧은 순간은 특별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강릉=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