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집 살림 나선 연합사·유엔사···美, 전작권 전환 대비?

지난 7월 30일 열린 유엔군부사령관 이ㆍ취임식. 왼쪽부터 웨인 에어 신임 부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당시 사령관, 토머스 버거슨 전임 부사령관. 토머스 버거슨 전임 부사령관은 주한 미7공군 사령관(중장)이다. 에어 부사령관의 취임 전까지 유엔사 부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사진 주한미군]

지난 7월 30일 열린 유엔군부사령관 이ㆍ취임식. 왼쪽부터 웨인 에어 신임 부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당시 사령관, 토머스 버거슨 전임 부사령관. 토머스 버거슨 전임 부사령관은 주한 미7공군 사령관(중장)이다. 에어 부사령관의 취임 전까지 유엔사 부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사진 주한미군]

 
지난 8월 30일 미국 육군의 마크 질레트 소장이 유엔군사령부(유엔사) 참모장(Chief of Staff)에 취임했다. 유엔사가 겸직이 아니라 별도로 참모장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유엔사 참모장은 주한미군사령부(주한미군사) 참모장이 겸직했다. 전임 유엔사 참조장인 마이클 미니핸 소장은 8월 30일 이후 주한미군 참모장만 맡고 있다.

유엔사는 앞서 지난 7월 30일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을 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유엔사 부사령관을 미국 이외의 6·25 전쟁 참전국가 장성에 맡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부 소식통은 “유엔사는 에어 중장과 질레트 소장뿐만 아니라 부참모장 등 지금까지 겸직이었던 참모 자리들을 새로운 인원으로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유엔사는 빛바랜 정전 협정의 사진 속에서나 되살아나는 사령부였다. 유엔사는 1978년 한ㆍ미연합사령부(연합사)가 만들어진 뒤 한국을 방위하는 임무에서 해제됐고,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사령관이 한ㆍ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함께 써 왔다. 주한미군사령부 참모들도 유엔사 참모를 겸직하는 게 관례였다. 이 때문에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이 아닌 연합사령관에 더 방점이 찍혔다. 그런 유엔사가 최근 들어 겸임 자리를 줄이면서 사실상 ‘유엔사 홀로서기’의 기반을 착착 쌓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군 당국은 2014년부터 연합사와 유엔사의 보직 겸직을 줄이는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유엔사 ‘재활성(revitalization)’ 프로그램의 하나다. 정부 소식통은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추진한 정책”이라며 “커티스 스캐패로티 전 사령관(2013년 10월~2016년 4월)이 ‘참모진의 업무 부담이 너무 무겁다’고 지적한 뒤 적극적으로 겸직을 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엔사-연합사의 겸직 축소는 단순한 업무 부담의 분산 차원을 넘어선다. 당장은 중국ㆍ북한의 유엔사 배제 주장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성출 전 한ㆍ미연합 부사령관은 “북한ㆍ중국ㆍ러시아의 유엔사 무력화 공세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법률적 정당성을 갖추려는 작업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동안 연합사로 충분했던 한반도 군사안보 체제에서 이젠 미국이 유엔사로 갈아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조치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연합사는 한ㆍ미가 공동 작전계획을 만들고 연합훈련을 실시하며 양군 군의 무전기까지 유사시 같은 주파수를 쓰도록 하는 ‘한집 살림’ 체제다. 반면 유엔사는 참전국 수장인 미국이 6·25 전쟁 참전국들을 지휘해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중국과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과는 ‘딴 집 살림’에 더 가깝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ㆍ미는 연합방위지침에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명시하면서 “한국 합참, 연합사, 주한미군사, 유엔사 간 상호관계를 발전시킨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또 양국은 ‘한국 합참-유엔사-연합사 간 관계 관련 약정(TOR-R)’을 맺었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각종 문서에서 유엔사와 연합사가 명확히 구분이 안 돼 이번에 정리한 것”이라며 “미국의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합사나 유엔사나 굳이 권한을 가를 필요가 없었는데 이젠 유엔사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박원곤 한동대 지역학과 교수는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 한ㆍ미 관계가 나빠질 경우를 대비해 연합사를 껍데기만 남겨두고 유엔사가 대신하는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관을 한국군 4성 장군 아래로 들어가는 주한미군사령관과 별개로 앉힌 뒤 유엔사→주한미군사 구조로 상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 3월 쌍용 한ㆍ미 연합 상륙훈련에서 호주 육군 6연대 B중대 소속 병사들(왼쪽 첫째와 둘째)가 미 해병대와 함께 소대 공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유엔군사령부 전력 게공국은 호주는 연합훈련에 자주 참가하고 있다. [사진 미 해병대]

2016년 3월 쌍용 한ㆍ미 연합 상륙훈련에서 호주 육군 6연대 B중대 소속 병사들(왼쪽 첫째와 둘째)가 미 해병대와 함께 소대 공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유엔군사령부 전력 게공국은 호주는 연합훈련에 자주 참가하고 있다. [사진 미 해병대]

 
이 경우 유엔사가 연합사를 대신해 한반도 안보 상황에 개입하고, 유엔사 후방기지의 위상도 아울러 커질 가능성이 있다. 유엔사는 전력 제공국(Sending States)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 모두 7곳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유엔사 후방기지 지휘소는 도쿄 근처 요코스카 공군기지에 있다. 사령관은 호주 공군 대령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6ㆍ25 전쟁 때처럼 다시 전투부대를 파병하겠다는 국가가 전력 제공국이다. 유사시 전력 제공국의 병력과 장비는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에 집결한 뒤 한국으로 보내진다. 유엔사의 부상은 이면에선 일본의 역할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일각에선 유엔군사령관과 유엔사가 다시 일본에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원래 유엔사는 57년 7월 1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 서울로 옮겨졌다. 군 안팎에선 한국도 유엔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돼 왔다. 유엔사 부사령관에 한국군 3성 장군을 앉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적극적인 유엔사 참여에 대해 껄끄러워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