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는 여성 도망 못 가는 이유…반려동물도 받아주는 곳 생겼다

기사와 관련없는 자료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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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을 당하고 있어서 키우는 고양이와 함께 보호시설에 들어가려 했지만 그런 시설이 없다 하네요. 결국 입소를 포기했어요.”(20대 스토킹 피해 여성)

지난해 부산시가 운영하는 여성폭력방지종합지원센터로 걸려온 상담 내용이다. 부산시가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를 위해 이들의 반려동물을 대신 돌보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서울, 경기도가 2020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전국에서 세 번째다.  

여성폭력 피해자는 보호시설에 입소하기 전 서비스를 신청하면 부산시가 지정한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에서 최대 7개월간 위탁 보호해준다.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에서는 최대 5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다. 

또 여성폭력 피해자가 야간이나 주말 등 동물병원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대에 긴급 피난처에 입소하는 경우 부산시가 지정한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을 최대 7일간 일시 보호해준다.

여성폭력 피해자의 반려동물이 주인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경우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지원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기존의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시설 중 11개 호실은 동반 입소가 가능하다. 


여성폭력 피해자가 보호시설에서 나온 뒤 개인 사정 등으로 반려동물을 더 이상 키울 수 없으면 부산시가 입양도 추진한다.

지난 2월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PET&MORE 부산 반려동물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반려견과 함께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5 PET&MORE 부산 반려동물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반려견과 함께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반려동물 동반입소 상담 30여건…시설 미비로 입소 포기

부산시는 여성폭력 피해자가 반려동물을 맡길 곳이 없어 보호시설 입소를 포기하고 폭력 상황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이 사업을 도입했다. 부산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지난해 여성폭력방지종합지원센터에 반려동물과 함께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사례가 30건이 넘었다”며 “상담을 했던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모두 입소를 포기하는 것을 보고 이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부산시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효정 부산시의원(국민의힘, 덕천·만덕)은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력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반려동물 때문에 주저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며 “가해자의 가정폭력은 반려동물을 향한 폭력을 수반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 내 반려동물 가구가 점점 늘고 있어 정책 도입이 시급했다”며 “단 한명의 피해자라도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반려동물 인구는 2022년 기준 47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0%에 이른다. 부산시는 지난해 ‘반려동물 친화 도시’를 선언하고 올해부터 5년간 총 1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반려동물 관련 산업시설 기반 등을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