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집 두 채 살 돈 썼다" 씨름 부활 씨름하는 미스터 김

씨름 경기 장면. 한국에서도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씨름의 전통을 미국에서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연이 뉴욕타임스에 최근 소개됐다. [사진 중앙포토]

씨름 경기 장면. 한국에서도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씨름의 전통을 미국에서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연이 뉴욕타임스에 최근 소개됐다. [사진 중앙포토]

 
명절이면 생각나는 씨름. 태평양 건너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 퀸스 한복판에서 씨름의 부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재미 교포 김상현(56) 씨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김씨의 노력을 ‘한국의 전통을 지키려는 미스터 김의 외로운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NYT의 스타 사진기자인 재미교포 이장우 기자가 존 를랜드 동료기자와 함께 발굴한 기사다. 이장우 기자는 9ㆍ11 테러 사진촬영 등으로 퓰리처상을 다수 수상했다.  

이장우 기자가 촬영한 김상현씨의 모습은 평범한 50대 한국인 남성의 모습이다. 부인 김희수 씨가 차려주는 밥상엔 잡곡밥과 깻잎, 풋고추, 각종 김치는 물론 보글보글 끓는 찌개까지 한국음식이 푸짐하다. 젓가락을 든 김씨는 웃통을 벗은 채 부인이 차려주는 밥상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소개한 재미교포 김상현 씨와 부인 김희수씨의 식사 시간이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 이장우 기자]

뉴욕타임스가 최근 소개한 재미교포 김상현 씨와 부인 김희수씨의 식사 시간이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 이장우 기자]

 
NYT에 따르면 사업가인 김씨는 뉴욕 인근 퀸스의 아파트 지하층에 산다. 생업보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건 씨름이다. 
NYT는 “김씨는 지난 30년 간 1700년 된 한국의 전통 레슬링인 씨름을 (미국에) 소개하기 위해 거의 혼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NYT에 “한국계 미국인 아이들이 한국의 문화를 너무 모른다”며 “한 명이라도 씨름을 배우겠다고 하면 그 아이를 위해 반드시 간다”고 말했다.  

NYT는 씨름을 일본의 스모와 비교하며 "스모와 달리 상대를 링 밖으로 힘으로 밀어낸다고 점수를 얻는 게 아니다. 상대를 때리거나 발로 차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씨름을 두고 “신사적 스포츠”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씨름을 뉴욕에서 부흥시키기란 어려운 일. 김씨가 씨름을 위해 자비로 쓰는 돈만 해도 1년에 1만5000달러(1789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주변에선 “씨름으로 결국 돈벌이 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의 부인 김씨가 속이 상하는 이유다. “남편이 그렇게 씨름을 위해 열정을 쏟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비웃으면 정말 속상하다”며 “씨름에 헌신하는데 그런 대접밖에 받질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부인은 말한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소개한 재미교포 김상현 씨. 뉴욕 퀸스 한복판에 직접 삽을 들고 모래판을 조성해 씨름 시범경기를 연다. 김씨 자비로 하는 행사가 많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 이장우 기자]

뉴욕타임스가 최근 소개한 재미교포 김상현 씨. 뉴욕 퀸스 한복판에 직접 삽을 들고 모래판을 조성해 씨름 시범경기를 연다. 김씨 자비로 하는 행사가 많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 이장우 기자]

 
김씨는 한국에서 씨름 선수들을 초청해 시범경기를 열고, 아이들을 위한 씨름 교실을 운영한다. 시범 경기가 있을 땐 직접 모래판을 만들기도 한다. 한 번은 새벽 4시부터 직접 삽을 들고 모래판을 만들었다. 손에 물집이 잡힌 그는 NYT에 “한때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눈물도 흘렸다”고 말했다.  

그에게 힘이 되는 건 씨름을 배우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다. 최근 뉴저지의 한 체육관에서 열린 씨름 교실에서 10대 아이들이 샅바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싱글벙글했다. “얘들 좀 보시라”며 “한국 문화를 배우는데 씨름을 빼먹을 순 없으니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시범경기를 여러 번 선보인 천하장사 출신의 이태현 교수(용인대)는 “미국 뉴욕에서 (김씨 이전엔) 씨름을 보존하려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누구보다도 부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는 “씨름만 아니었어도 큰 집 2채는 샀을 것”이라며 “와이프에게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씨름을 챙기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씨름은 내게 자식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