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신차 사지 말라는 한국GM 노조···업계선 "너무 나갔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19일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한 투쟁지침에서 오는 24일 수입차(쉐보레 브랜드 수입차량) 불매운동에 나서는 걸 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 홈페이지 캡처]

한국GM 노조는 지난 19일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한 투쟁지침에서 오는 24일 수입차(쉐보레 브랜드 수입차량) 불매운동에 나서는 걸 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 홈페이지 캡처]

“수입차 불매운동 기자회견을 갖겠다”

지난 19일 금속노조 한국GM지부(한국GM 노조)는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한 ‘중앙쟁의대책위원회 투쟁지침’에서 이렇게 밝혔다. 오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GM이 ‘쉐보레’ 브랜드로 한국에서 팔고 있는 차에 대해 불매운동에 나서겠단 의미다.

한국GM 노조가 불매운동 대상으로 삼겠다는 차량은 최근 출시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래버스와 픽업트럭 콜로라도다. 노조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사측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자사 판매 차량 불매운동까지 나서는 이유는 뭘까.

한국GM이 미국시장의 베스트셀링 픽업트럭 콜로라도를 8월 공식 출시한다. 쌍용차가 선점한 국내 픽업트럭 시장에서 선전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 한국GM]쉐보레 트래버스
 
현재 한국GM이 한국시장에서 판매 중인 차량은 모두 11종이다. 이 가운데 5종이 직수입 차량이다. 트래버스·콜로라도 외에 대형세단 임팔라, 스포츠카 카마로SS, 전기차 볼트 등을 수입해 국내 판매망을 통해 팔고 있다. ‘한국 완성차 업체’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GM이 최근 수입차협회에 가입하면서 “국내 생산 대신 수입차 사업에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한국GM 노조가 자사 차량 불매운동까지 하는 건 ‘너무 나간’ 대응이라고 본다. 한 완성차 업체 노조 관계자는 “국내 고용·생산에 대한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수입차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 노조가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누적 적자가 산더미 같은 상황에서 자사 차량 불매운동까지 검토하는 건 자칫 여론을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전면 파업에 들어간 한국 GM 부평공장 전경. 노조가 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전면 파업에 들어간 한국 GM 부평공장 전경. 노조가 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한국GM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5.65% 인상과 함께 성과급·격려금 명목으로 1670만원을 지급할 것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형편이 나은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 초기에 제시한 격려금 70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GM은 지난 5년간 4조4000억원이 넘는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좀처럼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국GM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부평2공장 생산계획을 밝히라는 요구에 사측이 묵묵부답인 것도 이해하긴 어렵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한국GM의 부평 1·2공장은 연간 5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GM 사측은 RV 캡티바·올란도 등을 단종하면서 추가 생산물량 배정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 이후 정부와 GM 협상에 참여했던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GM본사는 한국 생산물량을 최대 37만대까지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 말대로라면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부평2공장 폐쇄나 1·2공장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지난해 폐쇄한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모습. GM 본사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한국 내 생산공장의 추가 폐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지난해 폐쇄한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모습. GM 본사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한국 내 생산공장의 추가 폐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 이후 8000억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지만 GM 본사는 물론, 한국GM조차 국내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당시 약속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M 글로벌 차원의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고, 폐쇄가 결정된 GM인터내셔널(GMI) 부문의 생산공장 두 군데 가운데 한 곳이 한국이 될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 GM 조합원들은 12년 만의 파업에 돌입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를 맞아 GM이 수년간 진행해 온 구조조정이 주원인이다. GM 사측과 UAW 대표들은 협상을 계속하고 있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GM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뒤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GM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뒤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GM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미래 차 개발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지속됐던 UAW와의 밀월관계를 훼손할 수 밖에 없었다”며 “메리 바라 회장이 98년 파업 당시 공장 매니저로 UAW와 협상하는 등 좋은 관계를 가져왔지만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에서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노사 협상에 따라 구조조정의 불똥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의 생산시설로 튈 수도 있는 상황이다. 1950년대 중반 신진공업(이후 신진자동차)으로 시작해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를 거쳐 2001년 GM에 인수된 한국GM의 미래는 창사 이후 가장 불투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