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 학생기자단이 양복 재단사와 시니어 스타로 제2의 삶을 사는 여용기 할아버지를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다. (왼쪽부터) 한승민·홍예린 학생기자·여용기 재단사·노효은 학생기자
80세 노인처럼 움직이자 햄버거 하나 사 먹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요즘 SNS에서는 노년의 모습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사진 애플리케이션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나이 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잘 없을 거예요. 대부분 늙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죠. 소중 독자 여러분에게 노년은 멀고 아득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되돌릴 수 없죠. 누구나 노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의 삶을 체험해보고, 앞으로 우리의 삶도 계획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요.
글=
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
임익순·
송상섭(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
노효은(경기도 와석초 6)·
한승민(서울 상곡초 5)·
홍예린(경기도 정평중 2) 학생기자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일 경우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노인 인구 비율 7.3%로 고령화 사회 진입 후 2017년 14.2%를 기록하며 17년 만에 고령 사회로 들어섰는데요.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수준인 합계 출산율과 수명 증가로 인해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요. 우리나라 고령 인구 비율은 올해 14.9%로 201개국 중 52위죠. 하지만 2045년에는 37%로 1위가 되고 2067년에는 46.5%까지 오를 것으로 조사됐어요.
노인층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문제가 되고 있어요. 노인 혐오 문제와 세대 간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죠.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 1000명과 청·장년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노인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대나 방임을 경험했다는 노인은 전체 10%로 집계됐고, 나이로 인한 차별을 겪었다는 노인도 21%로 나타났습니다. 세대 간 갈등도 높았는데요. 노인의 40.4%는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답한 노인도 44.3%에 달했죠. 청·장년 10명 중 9명(90%)은 ‘노인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답했고 ‘노인과 세대 갈등을 심하게 경험했다’고 답한 청장년도 80.4%로 집계됐습니다. 노인을 이해하는 노력과 세대 간 소통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80대의 몸이 되어 본 하루 노인의 삶을 겪어보고 이해하면 오해를 방지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올바른 인식으로 증진시키고 세대 간 이해 폭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대한노인회에서 운영하는 노인생애체험센터를 찾아 노인의 삶을 체험해봤죠. 심순자 센터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에 “노인 하면 몇 세를 말할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한승민 학생기자가 70세, 80세라고 답했어요. “특별히 정해졌다기보다 만 65세가 되면 노인기초연금과 지공선사증이 나오죠.” 지공선사증이 무엇일까요. 처음 들어 보는 말에 학생기자들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 했죠. “여러분 은어 많이 쓰죠. 지하철 공짜표를 선사한다는 말이에요.” “아~”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65세는 어떻죠?” 한승민 학생기자가 “팔팔해요”라고 말했어요. “청춘이죠. 그래서 우리는 80세가 넘은 어르신의 신체를 체험해 볼거예요.” 시작 전 심 센터장이 노인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를 해줬습니다.
“노인 하면 어떤 단어가 생각날까요?” “복지”(승민), “할머니, 할아버지”(효은), “나이” (예린), “역시 기자들이라 다르네요. 보통 대학생이나 어른들에게 물으면 치매·관절·주름·지팡이 등 거의 100% 부정의 단어만 써요. 우리 한승민 학생기자에게 박수 쳐주세요. 제일 확실한 긍정의 답을 했어요.” 심 센터장은 노인들도 부정적인 단어에 해당하는 항목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복지 역시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나중에 여러분이 받아서 쓰는 거라고 했죠. 노인에게 쓸 수 있는 긍정의 말로 삶의 지혜를 추천해줬어요. 80세가 넘은 어르신들은 주로 집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가상 노인 체험장 내부는 집 안 구조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지하철에서 노인들이 젊은 사람을 툭 치고 간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요. 노인들은 등이 굽고 앞도 잘 안 보이고 들리지도 않아요. 근력이 저하돼 힘도 없고 유연하게 비킬 수도 없죠. 체험복을 입고 직접 노인의 몸을 체험해 보세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정리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는 일부터 힘겹다.
노안·백내장·녹내장 등의 안과질환이 있으면 글씨와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물건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노인의 근육·관절과 비슷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팔·다리·허리 등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보조기구를 착용합니다. 기구의 무게는 대략 6㎏ 정도. 이 무게를 각 신체에 나누어 짊어져야 합니다. 등 보호대는 등을 굽게 만들고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면 근력이 저하되는 느낌을 주죠. 수분이 마르고 주름지는 손의 감촉을 위해 하얀 장갑과 손 관절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리스트럭터를 착용하고, 안과 질환을 체험하기 위해 시야를 좁히는 고글도 씁니다. 체험복을 입고 걸어봤습 니다. 평소처럼 걸었지만 발이 무겁고 무릎도 제대로 펴지지 않았죠. ‘아이고~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소파에 앉는 것도 힘들고 일어서는 건 더 힘들었죠. 옆을 봤더니 소파 위에 디딤보조 방석이 올려져 있었어요. 방석에 앉았더니 천천히 내려가고 천천히 올라와 무릎에 무리를 덜 주었습니다. 체험장 안에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고령친화제품·실버제품도 있었죠. 직접 바닥에 누워보고, 침대에도 누워보며 어떤 게 더 어르신들에게 편한지도 알 수 있었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음료수가 들어 있었지만 이게 어떤 음료수인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 글씨를 크게 쓰는 배려가 필요해요. 2ℓ짜리 물 보다는 500㎖ 물을 넣어주는 게 좋겠죠. 2ℓ는 너무 무거워요.”
도전이 되어버린 일상 소중 학생기자단이 노인 체험복을 입고 거리로 나가 횡단보도를 직접 건너봤다.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다 보니 공포감도 느껴진다.
더 실감나는 체험을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은 체험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봤습니다. 무겁고 뻣뻣한 보조기구를 착용하니 평지를 걷는 일도 과제처럼 느껴집니다. 평소 길에서 내 앞에 노인분들이 걸어가면 답답했던 기억이 있을 거예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도 느릿느릿 건너는 모습을 목격했을 수도 있고요. 느리게 걷고 싶어서가 아니라 속도를 낼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계단을 내려갈 때는 무릎을 굽힐 수가 없어 벽을 짚거나 의지할 것을 찾기 바빴습니다. 귀마개를 끼고 횡단보도도 건너봤어요. 체험복이 눈에 띄어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창피함도 잠시, 파란불이 바뀌기 전에 걸어가기 바빴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공포감도 느껴졌어요. 관절도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등 보호대 때문에 허리를 구부리거나 몸을 좌우로 둘러보기도 쉽지 않았어요.
노년에는 취미 생활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요. 책을 든 노효은 학생기자는 노랗게 보이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웠어요. 눈을 찡그려도 글씨는 작게 보이고 답답했어요. 글자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니 결국 고개를 내어 앞으로 다가가 힘겹게 볼 수밖에 없었죠. 한승민 학생기자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게임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 로그인하는 것도 힘겨워요.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도, 장갑을 낀 손으로 자판을 치는 것도 힘들었죠. 결국 노효은 학생기자의 도움을 받아 로그인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를 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죠. 누가 알았을까요. 눈을 뜨는 것도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요. 홍예린 학생기자는 노년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팔이 무거워서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았죠. 마음과 다르게 선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다 삐끗삐끗해서 괴로웠습니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체험도 해봤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노인들에게 기계로 주문하는 일은 큰 과제다.
요즘 패스트푸드점에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게 합니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힘들어졌죠. 평소 키오스크를 사용해 본 적 있는 한승민 학생기자가 주문을 해봤습니다. 시야가 좁아 화면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고 버튼을 찾는 게 일이었습니다. 메뉴를 미리 정해 놓고 작동법도 능숙했기에 그나마 빠른 36초가 걸렸죠. 노인 체험 고글을 벗고 주문을 해봤더니 시간이 더 단축돼 20초가 걸렸어요. 기계 다루는 것도 힘든데 눈까지 잘 안 보이는 노인들에게 키오스크 주문은 너무 큰 과제입니다.
햄버거를 먹는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 잡는 것만으로 땀이 흐릅니다. 멀리 있는 감자튀김을 잡는 것도 문제였죠. 빨대를 찾아 컵에 꽂기도 힘듭니다. 햄버거를 먹다 보니 종이가 씹히는 것 같았죠. 눈앞에 가까이 대고 나서야 제대로 햄버거만 먹을 수 있었어요. 몸을 꽉 조이고 있으니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았죠. 가장 하기 쉬운 일이 어렵다는 현실이 기분을 울적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건 체험복도 점점 익숙해진다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무겁게만 여겨졌고, 노랗게 보이는 게 이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이 되었어요. 미래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양복 재단사 겸 시니어 스타 ‘여용기 할아버지’와의 만남 소중 학생기자단이 양복 재단사와 시니어 스타로 제2의 삶을 사는 여용기 할아버지를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다. (왼쪽부터) 한승민 학생기자·여용기 재단사·노효은·홍예린 학생기자
재단사로 일하며 직접 만든 옷을 입고 SNS에 공유하면서 패셔니스타로 유명해진 여용기 재단사.
시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젊은이들의 전유물 같던 영역에 시니어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습 니다. 모델로 활동 중인 김칠두 할아버지(65세),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73세)를 비롯해 자신만의 콘텐트로 여러 세대와 교감하는 시니어 크리에이터들도 많죠. 삶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로 흔히 봐왔던 SNS 스타들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의 닉 우스터(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디렉터)’, ‘남포동 꽃할배’로 불리는 여용기(67세) 할아버지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패셔니스타입니다. 재단사로 일하며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서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최근엔 광고를 찍는 등 방송 활동을 하며 유튜버로도 활약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여용기 재단사가 일하는 부산의 ‘에르디토(EREDITO)’를 방문했습니다. 세로줄 무늬 더블슈트에 행커치프를 매치하며, 포마드로 백발을 단정히 빗어 넘기고 멋스러운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이 마치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비밀 요원을 연상케 합니다.
재단사 일과 노년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예린 직접 소개 부탁드립니다. “내는(특유의 사투리가 인상적) 에르디토 양복점에서 재단사 일을 하는 여용기. 17살 때 고등학교 가려고 고향 거제도를 떠나 부산을 왔어요. 사촌 누님 집에 잠깐 있었는데 지인 중에 양복 기술자가 있어 양복 만드는 걸 배우기 시작했죠. 20대에 양복점을 개업하며 잘 나갔는데 기성복 시장이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 초반 문을 닫았죠. 20년 정도 재단 일을 떠났다가 5년 전 에르디토 민병태 대표를 만나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패턴 뜨는 거 다 잊어버려서 한 달 동안 새로 배우고 그랬죠.”
효은 양복을 재단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고객이 나한테 옷을 맞추러 왔을 때는 내 혼신을 다한다는 느낌, 그분이 어떤 걸 요구하는가 내가 어떻게 해주면 그분이 아름답게 보일까 그런 걸 자면서도 생각하고 아침에 운동 하면서도 생각해요. 자나 깨나 그 생각을 하고 혼신을 담아서 패턴 뜨고 하죠.”
여용기 재단사가 일하는 공간에는 줄자·시침핀 등 재단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도 볼 수 있다.
승민 다시 시작할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힘들었죠. 다 잊어버리고 젊은 친구들이 옷을 입는 트렌드나 유행도 몰랐고요. 우리 대표가 인스타그램 이런 걸 보여주고, 컴퓨터로 패션쇼도 보여주면서 세계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알려줬죠. 그때는 닉 우스터도 누군지 몰랐어요(웃음).”
효은 예전과 현재 재단하면서 차이가 있는지, 지금까지도 옷을 재단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젊었을 때는 사람들이 가봉하러 오는 게 귀찮으니까 전화로 몸무게·키만 알려 줘도 재단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드니까 금 방 한 것도 잊어버리고 적은 거 보고 또 봐요.
옛날에는 하루에 양복 다섯 벌 맞췄어요. 혼자 사람 상대 다 하고, 근데 지금은 한두 벌 하는 것도 힘들죠. 근데 힘들어도 해야죠. 집에 있으면 뭐 할 거예요. 대표 만나서 죽을 때까지 같이 간다 했으니까 지팡이 짚고라도 나올 수 있으면 나오고, 제자들 키워가면서 계속하는 거죠.”
승민 어린 학생도 양복을 맞출 수 있나요.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아까워요. 어리다고 돈을 적게 받는 게 아니고 만드는 시간은 똑같잖아요. 어린 학생은 가만있지 않아요. 1년 입었는데 훅 자라죠. 그래서 안 해줘요. 아동복에서 저렴한 거 입다가 더 이상 안 크는 성인이 됐을 때 맞추는 게 맞죠. 옛날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면 아버지가 양복점에 데리고 가서 기념으로 해줬어요.”
예린 SNS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에르디토 대표가 제안을 했어요.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지 말고 수염도 길러보라고 하더라고요. 조금만 더 가꾸면 닉 우스터 만큼 될 것 같다고. 젊은 친구들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니까 폭발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SNS도 처음엔 어려웠는데 젊은 직원들한테 물어가며 배웠어요. SNS 보고 양복 맞추러 오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외국에서도 오죠.”
승민 원래 옷을 좋아하고 잘 입으셨나요. “예전 양복점 할 때는 양복 입고 그러면 멋있다 그런 소리 듣고 했어요. 광복동 재단사 중 최고 잘생겼다는 소리도 듣고(웃음). 일 그만 두고는 보통 아버지들처럼 등산복 입고 편하게 다녔죠. 다시 일하면서 젊은 층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잡지도 읽고 이탈리아의 최신 트렌드를 연구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한승민 학생기자에게 본인이 만든 슈트를 입혀주고 있는 여용기 재단사.
예린 선생님이 생각하는 패션이란 무엇이고,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해요. “자기 몸에 어울릴 수 있도록 갖춰서 입는 패션이라 생각해요. 남한테 잘 보여줄 수 있고 자기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본인이 자꾸 입어보고 느껴봐야지 감각도 유지할 수 있죠.”
효은 인생 2막을 살고 계시다고 할 수 있는데 2막을 열 수 있었던 계기를 꼽는다면.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바뀌어요. 내가 우리 젊은 대표 안 만났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촌스럽게 머리 물들이고 옷도 멋있게 안 입고 다녔을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바뀝니다.”
여용기 재단사가 일하는 에르디토 매장에서 기념 촬영도 했다. 특히 한승민 학생기자는 여용기 재단사가 만든 슈트를 입고 있다.
승민 나이 듦이란 어떤 것이고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책 한 권이 100페이지라 생각하면 여러분은 아직 10몇 페이지밖에 안 본 거라 나머지 80페이지, 90페이지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요. 그 책을 여러분이 다 채워야 해요. 우선 몸이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나도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내 몸이 건강하지 않고 정신이 안 맑았으면 재단 일을 다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다른 일을 하더라도 내 몸은 건강하게 지켰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죠. 항상 준비된 자세가 필요해요. 또 최소 밑거름이 있어야 사람이 커 가겠죠. 그게 교육이에요. 그것도 잊지 마세요. 여러분 중 한 명이 커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도 있고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항상 꿈을 크게 가지세요. 잘 늙기보다 잘 익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남을 잘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고 잘 안 되겠지만 그런 노력을 많이 하면 주위에서 존경도 받고 잘 익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노인 체험복을 착용하니 침대에 눕고, 팔과 다리를 굽히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들었죠. 고글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여 물체가 흐릿하고 장비를 착용하니 손을 쥐락펴락하는 것마저도 버거웠죠. 계단을 내려갈 때도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얼마나 발을 내디뎌야 하는지도 보이지 않고, 손잡이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는데도 비틀거리고 무릎이 아팠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차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자세히 봐야 하고 신호등도 주의 깊게 봐야 했죠. 저는 평소 지하철을 많이 타서 노인들을 자주 보고, 지하철 끝쪽에 마련된 노약자석을 보고 ‘얼마나 힘들면 좌석까지 마련되어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많았죠. 노인 체험을 해보고 노인들이 지하철역까지 와서 타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평소 노인을 고집이 센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그분들도 자신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 계기였습니다. 앞으로도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다른 사람에게도 노인들을 배려해줘야 한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이번 체험을 해보고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난 것 같아요. 여용기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노년의 삶을 여용기 할아버지처럼 보내기 위해 현재를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노효은 학생기자
평소 노인을 보면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늙겠지’ 생각했고, 노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죠. 노인인구가 점점 늘어나 고령 사회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노인 의료시설과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인생애체험센터를 방문해 노인에 대한 마음가짐, 노인을 대하는 태도 등의 설명을 들었죠. 그 후 체험복을 입고 앉아서 신발 신기, 문손잡이 열기, 의자에 앉기 등을 했죠. 70~80대 할머니·할아버지가 이렇게 불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냥 걷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죠.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힘든 몸으로 요리도 하고, 매일 운동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수 있어 노인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마음도 생겼답니다. 부산에서 만난 여용기 재단사는 젊게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부럽기까지 했죠. 재단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였어요.
한승민 학생기자
평소 대중교통에서 노인이 보이면 항상 자리를 양보했고 행동이 불편해 보이면 도움이 필요한지 여쭤봤죠. 하지만 ‘노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관 지은 단어는 주로 흰 머리, 늙음과 같이 그리 긍정적인 건 아니었죠. 어쩌면 몸으로는 선행을 베풀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노인을 알게 모르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노인 체험을 해본 뒤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하며 간단한 일들이었지만 관절 마디마디가 움직이지 않았고 몸은 땅으로 꺼질 것 같이 무거웠죠.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고, 할머니의 의성어들이 이해됐죠. 장치를 벗으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죠. 노인들도 옛날에는 토끼처럼 뛰어다녔을 겁니다. 물론 노인들이 아무 데나 화를 내거나 폐를 끼치는 것을 다 이해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런 마음이겠거니 하며 조금이라도 이해하자는 것이죠. 아무 데나 화를 내고 폐를 끼치는 노인은 ‘노인’이라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이 이상한 것이니 모든 노인을 싸잡아 욕하지 맙시다. 여용기 재단사는 생각보다 더 건강하고 멋있으셨어요. 우여곡절 많았던 그분의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 같다고 느꼈죠. 나는 지금 출발선도 지나지 않았구나 생각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컸을 때 꼭 누군가에게 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홍예린 학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