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부론’ 두고 원조 논쟁…총선 앞두고 여야 모두 “경제”

국회에서 때아닌 저작권 논란이 불붙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2일 당 경제 정책으로 내세운 ‘민부론(民富論)’을 두고서다. 하루 뒤인 23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한국당이 내세운 민부론은 이름은 도용하고, 내용은 가짜인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민부론은 2006년부터 본 의원이 줄곧 주창해 온 이론이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민주당의 정신이 담긴 이론”이라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구조 개혁을 통해 이 땅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후보 도전에 나서면서 사단법인 민부정책연구원을 자신의 싱크탱크 격으로 설립했고, 지금도 이사장을 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오른쪽)과 지난 2006년 민부론을 기획한 임근재 경기경제과학진흥원 상임이사가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유한국당이 발표한 '민부론'과 관련해 '이름을 도용하고 내용이 가짜'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날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김광림 2020경제대전환위원장(왼쪽)이 자유한국당 경제비전, 민부론 언론인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오른쪽)과 지난 2006년 민부론을 기획한 임근재 경기경제과학진흥원 상임이사가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유한국당이 발표한 '민부론'과 관련해 '이름을 도용하고 내용이 가짜'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날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김광림 2020경제대전환위원장(왼쪽)이 자유한국당 경제비전, 민부론 언론인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자유한국당의 민부론은 친재벌·반노동,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부활하겠다는 것으로 특권경제 부활론”이라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경제성장도 이뤄진다’는 포용적 성장을 권고하는 이때, 250년 전 자본주의 태동기 이론(국부론)을 갖고 와 한국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어이가 없다”(김종석 의원)는 반응을 내놨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연 민부론 언론인 간담회에서 “이름이 비슷한 것은 감자탕·원조감자탕·진짜감자탕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김두관 의원의 ‘민부’라는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이나 빈곤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깎아내렸다. 조경태 한국당 최고위원도 “황 대표의 발표가 이슈가 되니까 여당이 견제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에선 그동안 전혀 경제를 신경 안 썼기 때문에 뼈아픈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김경록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김경록 기자

민주당 지도부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의 ‘민부론’을 맹공격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민부론은 김두관 의원이 지적재산권을 가진 정책인데, 남의 당 의원 정책 브랜드를 갖다가 이름만 베껴 쓰고 내용은 정반대로 발표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이인영 원내대표는 “민부론 어디에도 민생은 없었다. 이미 폐기 처분된 ‘747(이명박 대통령·연평균 7% 성장, 10년 뒤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줄푸세(박근혜 대통령·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 같은 실패한 경제에 대한 향수만 가득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에서도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노동시장 유연화하자는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은 재벌과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1%의 민부론이고, 대다수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99%의 민폐론”(심상정 대표)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이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가맹점주 경영여건 개선대책 발표 및 우수 상생협력 사례발표' 당정청 민생현안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이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가맹점주 경영여건 개선대책 발표 및 우수 상생협력 사례발표' 당정청 민생현안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오전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를 열고 가맹점주 경영 여건 개선 대책 등 상생과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책 추진을 발표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확산을 위한 우수 하도급거래 업체 유인 제공 등 자율적인 관행 개선 ▶수제화 업계의 대형 유통점 판매 수수료 체계 개편과 판로 개척 및 시설 지원 ▶다단계 도급 과정에서의 건설근로자 임금 삭감을 막기 위한 적정임금제의 내년 의무화 등을 목표로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의 을지로 민생현안회의는 당 을지로위원회를 범정부기구로 확대·격상한 회의체로 지난 2월부터 꾸준히 활동 중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국당의 민부론 발표 직후 관련 회의가 열리면서 분배(민주당) 대 성장(한국당)으로 여야의 경제 정책 선명성이 드러나게 됐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지역 현장에서는 ‘경제가 이대로면 내년 총선 승리도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며 “총선 때까지 이어질 여야 간 경제 논쟁이 막을 올린 셈”이라고 말했다. 

하준호·이우림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