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창비
기자와 같은 ‘아재’들이 이 소설집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심리적 경로를 밟을 수 있다. ①거부감. ‘띠지’라고 부르는, 책을 둘러싼 길쭉한 형태의 홍보지에 인쇄된 다음과 같은 문안 때문이다. ‘등단작 누적 조회수 40만건! 기억해야 할, 기억하게 될 이름’. 여기서 등단작은 소설집의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지시한다. 1986년생 작가 장류진은 지난해 ‘일의 기쁨과…’로 등단했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예술의 정점으로 사수해야 마땅할 종이책 소설도 이제는 조회수 혹은 클릭수를 내세워 홍보한다는 말이지? ②급격한 호기심. 정확히 30쪽 분량인 ‘일의 기쁨과…’를 읽고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어라, 재미있네? 여기서 재미는 공감, 실감, 웃음, 소설 제목처럼 알싸함, 이런 것들을 거느린 일종의 감정 성운(星雲)이다. ‘일의 기쁨과…’ 앞에 실린 ‘잘 살겠습니다’, 맨 뒤에 실린 ‘탐페레 공항’. 소설집의 다른 단편들을 이런 식으로 기웃거린다(소설집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물론 읽는 순서는 상관없다! 단편집이니까) ③타협·수용, 경우에 따라 적극적인 동의. 물론 홍보 문안대로 장류진이라는 작가 이름 혹은 소설책 제목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잘 쓰는 작가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여기까지 퀴블러로스의 죽음 수락 5단계를 흉내 내봤다)
![갓 취업한 젊은 세대의 일상을 실감 나게 그린 장류진 소설가. [사진 김준연]](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11/23/6966db96-7f1b-47e8-9e66-6e0faf949701.jpg)
갓 취업한 젊은 세대의 일상을 실감 나게 그린 장류진 소설가. [사진 김준연]
이렇듯 소설책은 그들,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앞서 시뮬레이션한 것처럼 일정한 내면 감화 단계를 거치면 아재도 읽을 수 있다. 결국 장류진의 세계는 아재들을 포함, 이 땅의 모든 경제 주체들이 감내해야 하는 갑을 관계의 괴로움(‘일의 기쁨과 슬픔’), 텅 빈 도심 한밤중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폭력의 공포(‘새벽의 방문자들’), 욕망과 낭만 뒤범벅인 연애 감정(‘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등등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재들에게도 얼마든지 해당되는 이야기들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의미를 끌어내려고 하는 거 보니 역시 아재, 이런 비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첨언하면, 소설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체로 직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다시 말하면 결국 인생 얘기다. 사회적 자아를 시연하는 경연장인 직장이야말로,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의 같은 제목의 산문집(『일의 기쁨과 슬픔』) 지적처럼, 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 직장에서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된다. 사람 간의 관계 역시 축의금 봉투 혹은 부의금 봉투의 두께로 판가름난다. 그런 점에서 장류진 소설은 세태 비판적인 소설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척 재미있는.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