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재팬 ‘제3극 AI 동맹’…영어·중국어 시장 뚫는다

라인 깃발 추가

라인 깃발 추가

과연 수퍼앱이 탄생할 것인가. 18일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손자회사 야후재팬은 도쿄 다나카와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경영통합 계획을 밝혔다. 일본 언론은 자국에도 수퍼앱이 등장할지 큰 관심을 보였다. 수퍼앱이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영화·음악·쇼핑·결제 등을 한번에 할 수 있는 패키지 형태의 앱이다.

1970년대부터 기술표준과 플랫폼 확보에 천착해온 일본은 두 회사의 경영통합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중국 기업에 이어) 세계의 제3극(極)이 되겠다”는 가와베 겐타로(川邊健太郞) 야후재팬 대표의 발언도 분위기를 달궜다.

두 회사의 통합은 일본 정보통신기술(ICT)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메가딜’이다. 라인은 일본 모바일 메신저 분야의, 야후재팬은 검색·쇼핑 분야의 강자다.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사용자 약 2억3143만 명(월간 기준), 연 매출 1조1618억엔(약 12조5000억원), 시가총액 3조엔(약 32조원)에 이르는 거대 ICT 공룡이 탄생한다. 지역적으로는 일본과 대만은 물론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를 아우른다.

경영 통합 설명자료에 ‘AI’ 26차례 등장

두 회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열쇠로 플랫폼이 아닌 ‘인공지능(AI)’을 꺼냈다. 라인·야후재팬의 경영통합 비전은 ‘일본·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리드하는 AI 테크 기업’이다. 이번 통합을 설명한 16쪽짜리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투자자 상대의 41쪽짜리 경영통합 설명자료에 AI가 총 26번 등장한다. 플랫폼이란 용어는 단 두 차례만 썼다. 두 회사에 AI는 그만큼 의미가 크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구글·아마존 같은 글로벌 ICT 기업을 꿈꾸지만 성장 잠재력의 차이가 크다. 한국과 일본 모두 영토가 좁고 두 나라 언어가 널리 쓰이지 않아서다. 영어와 중국어는 다르다. 미국 시장분석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3억7200만 명, 중국어인 사람은 12억8400만 명이나 된다. 구글과 네이버가 검색·광고·클라우드·동영상 등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시가총액이 37배나 차이 나는 배경이다. 중국 알리페이 사용자 수는 12억 명에 이른다. 일본 전체 가입자 수의 12배가 넘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태생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이 AI다. AI는 하나의 언어다. 최근 GIF 등 움직이는 사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듯, AI는 커뮤니케이션 없이도 선택과 판단을 도와주기 때문에 온라인 환경에서 보완적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 풍부한 빅데이터와 정교한 분석으로 설계된 AI는 만국공용어가 될 수 있다. 네트워크에 실린 AI는 일종의 인프라로 작동하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으로 종합 플랫폼으로서 고객 기반을 어떻게 확장하고 데이터를 얻느냐가 인터넷 기업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AI는 어디까지나 중장기 비전이다. 당장 경영통합부터 성공시켜야 한다. 이번 통합 무대는 일종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라인은 페이·파이낸셜 등 핀테크 분야 투자로 지난해 첫 적자(380억원)를 냈으며, 야후재팬은 구글·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 일본을 발판으로 동남아 등지로 시장을 키울 수 있다.

두 회사는 광고·플랫폼·핀테크와 시스템 개발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수퍼앱으로 키울 복안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대개 목 좋은 곳(사용자 수)에 여러 테마파크(콘텐트)를 짓고 많은 지출(페이)을 발생시키는 한편, 곳곳의 공터에 광고판(광고수익)을 설치해 이익을 낸다. AI는 관광객이 가능한 오래 테마파크에 머물며 많은 지출을 유도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라인은 판로로 사용자를 모으고, 야후재팬은 다양한 콘텐트를 공급해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계산이다.

광고의 경우 사업주와 고객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마케팅 창구를 늘리는 등 신규 시장을 개척한다. 시장 전환으로 현재 30%(라인·야후재팬 합산 4277억엔)인 일본 인터넷 광고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유동인구와 지출이 가장 많은 e커머스 부문도 강화한다. 야후재팬의 모기업인 Z홀딩스는 올해 인수한 의류 쇼핑몰 조조타운을 비롯해 야후쇼핑·아스쿨 등 여러 쇼핑몰을 갖고 있다. 야후재팬의 온라인 쇼핑몰 일 거래액은 지난해 기준 약 1조9400억엔(약 21조원)으로, 일본 e커머스 기업 중 세 번째로 많다. 라인이 창구 역할을 하면 방문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페이 분야는 과잉·중복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간 가맹점 확대 경쟁과 환급·쿠폰 등 거액의 마케팅 비용 탓에 재무적 부담이 컸다. 더불어 라인페이와 Z홀딩스 산하 페이페이는 총 5700만 명의 사용자 수를 앞세워 은행·증권·보험·신용카드 등 핀테크 분야에 뿌리를 내릴 계획이다.

새로운 통합 서비스 개발은 라인이 주도할 전망이다. 라인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Z홀딩스 산하 콘텐트 기업보다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 개발에 능해서다. 실제 신중호 라인 공동대표가 Z홀딩스의 최고개발책임자(CPO, Chief Product Officer)를 맡기로 했다. 대신 가와베 Z홀딩스·야후재팬 대표가 통합법인의 사장을 맡아 경영을 이끈다. 라인 관계자는 “통합 후 첫 번째 목표는 페이시장이 될 것이며, 일본에서  

1위만 달성해도 큰 성공”이라며 “경영은 야후재팬이, 개발은 라인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 개발자들을 통해 야후재팬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경영과 개발의 불균형 문제나 갈등의 소지도 있다. 다만 그간 합작법인 설립과 지분 투자에서 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던 소프트뱅크가 이례적으로 네이버와는 같은 비율로 투자했다. 그만큼 소프트뱅크가 절박했다는 의미여서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와 합작회사 ‘모넷테크놀로지’를 만들면서도 50.25%의 지분을 요구해 관철한 바 있다.

검색·쇼핑·GPS, 빅데이터 3대 축 확보

라인과 야후재팬이 좋은 성과를 거둘 경우 AI를 매개로 네이버·소프트뱅크의 밀월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네이버는 2000년대 세계 최고의 AI 연구기관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 현 네이버랩스)을 2017년 인수하는 등 AI 역량을 크게 끌어올렸다. 클라우드 서버 운영·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소프트뱅크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사업군에서 경쟁력이 있다.

소프트뱅크의 강점도 뚜렷하다. 네이버가 필요한 세계적인 모빌리티 플랫폼을 확보했다. 손정의 회장이 비전펀드 등을 지렛대로 미국 우버,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 그랩, 인도 올라 등 글로벌 승차공유 회사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협업하면 빅데이터의 3대 축으로 꼽히는 검색·쇼핑·GPS 분야를 모두 섭렵할 수 있다. 특히 아직 AI 개발이 더딘 모빌리티 분야에서 한발 앞서나갈 수 있다.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는 “한국·일본의 데이터는 양이 제한적이고 세계적으로 활용 가치가 낮아 네이버·소프트뱅크가 홀로 세계적 AI 기업이 되긴 어려운데 두 회사가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과점법 변수…두 회사 통합 한·미·일·대만 승인 받아야
라인과 야후재팬의 경영통합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두 회사는 늦어도 내년 1월 계약을 할 계획이다. 다만 경영통합 완료는 내년 10월을 목표로 잡았다. 통합이 독과점법·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미국에서도 승인 대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지지통신 등은 두 회사의 통합이 개인 데이터와 페이 플랫폼에서 독과점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을 주목하고 있다. 공정위는 인수·합병(M&A) 등으로 구매기록·위치정보 등 개인 데이터를 과점되면, 신규 사업자의 경쟁 제한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개인정보보호와 보안이 허술한 경우도 통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난 18일 통합 발표 기자간담회에서도 두 회사 대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개인정보보호 강화 계획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9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무상은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경제의 활성화와 편리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다수 사용자를 가진 사업자의 통합은 국민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일본 내 여론은 일부 마찰은 있을 수 있지만 공정위 승인은 무난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간 라인의 라인페이와 Z홀딩스의 페이페이가 출혈경쟁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일본 공정위가 과당 경쟁을 막자는 취지로 전향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최근 데이터 과점에 따른 경쟁 저해를 규제하는 것은 자국 기업보다는 이른바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를 염두에 둔 측면이 강하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