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얻어 부치는 밭은 작은 산에 붙어있다.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두릅나무 등이 섞여 자란다. 차가운 비 몇 번 내리고 이제 산은 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림은 단풍이 한창이던 때다. 산속에 틀어박혀 숲을 그리는 화가 친구가 있다. 천재가 틀림없는데 쉬지 않고 그린다. 그의 그림을 따라 해봤다. 대가에 대한 오마주랄까. 재료는 오일파스텔이다.
4월 첫 주부터 <삽질일기>를 연재했다. 헤아려보니 33주 동안이다. 뒷얘기 몇 꼭지를 모아 전하며 연재를 마친다.

새벽이슬 뒤집어쓰고 달달 떨고 있는 상추꽃. 이파리가 종잇장처럼 얇아도 상추는 추위에 꽤나 강하다. 얼고 녹으면서도 꽃봉오리가 벌어진다. 잎이 손바닥보다 넓은 아욱은 약한 서리에도 폭삭 무너진다. 겉 보고는 모른다.
내 농사는 수지가 맞을까. 보나 마나 본전도 안 나오겠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먼저 임대료다. 올해는 16.5㎡(5평) 1계좌에 15만원을 냈다. 20여 년 전 신도시에서 처음 밭을 얻을 때 3만5000원을 냈다. 그간 430%쯤 올랐다. 서울과 경기도의 땅값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많이 뛰었다. 동무들과 여러 계좌를 함께 얻었다. 한 사람당 5만원씩 연회비도 걷어 씨앗도 사고 밥도 먹는다.
다음은 기름값. 집에서 밭까지 왕복 40km 정도다. 차가 골골하는지라 연비를 후하게 잡아 10km/ℓ라 치고, 1400원/ℓ로 계산해보자. 33주를 오가면 1400×4×33=184,800원.
그리고 인건비. 내가 일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써야 하니 비용에 포함한다.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새벽부터 6시간쯤 일한다. 진을 빼고 돌아오면 오후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토요일이 다 가는 셈이다. 하루에 집중해서 10시간 정도 일하니, 8350×10×33=2,755,500원.
이 셋을 더하니 314만300원이다. 자동차 감가상각비, 세탁기 돌리는 전기·수돗물값은 뺐다. 채소를 시장에서 사 먹는다면 한해에 100만원이나 될까. 그러니 돈과 시간을 뿌리며 땡볕 아래서 사서 고생하는 셈인데 장사도 이런 밑지는 장사가 없다.
하지만 괜한 계산이다. 삽질 아니라면 주말에 눈곱 낀 얼굴로 종일 소파에서 뒹굴다가 코나 골 테고, 괜히 식구들 귀찮게 하며 짜증이나 낼 테고, 하릴없이 냉장고나 뒤지는 아저씨 놀이를 하고 있을 테니.

들깨 걷어낸 자리는 겨울, 배추 서있는 자리는 아직 가을. 저절로 떨어진 들깨씨는 내년에 다시 고개 들 테다.
장마가 끝나고 동무들과 배추 모종 180개, 무 모종 240개를 심었다. 고라니에게 무 50여개를 상납했지만 나머지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랐다. 작년에는 거름을 하지 않아 속이 덜 찬 배추를 거뒀는데, 올해는 밭 쥔장이 어찌나 닦달하던지 퇴비를 섞어 로터리를 쳤다. 초반에는 미친 듯이 자랐다. 추비를 하지 않아 그런지 10월 이후 자라는 속도가 주춤해졌다. 모종을 빽빽하게 심은 탓도 있겠다. 무도 무성한 잎만큼 자라지 않았지만 속은 돌멩이처럼 단단하다. 거름을 하지 않은 고랑에 심은 배추가 물건이다. 더디게 크고 이파리도 색이 옅은데 서서히 차오르는 속이 여간 야무지지 않다.
밭에 갈 때마다 조금씩 뽑아다 먹었다. 헤아려 보니 무 10개, 배추 12포기 정도다. 깍두기·무생채·배추쌈·된장국 끓여 먹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동무들과 동무의 동무들이 나누어 가졌다. 내 손으로 온갖 채소를 키우지만 정작 김장은 절임배추를 사서 담근다. 좁은 집안에서 배추를 쪼개고 절이는 일은 성가시고 번거롭다. 땀 흘리고, 나누는 일만으로도 좋다. 허당 농사라도 즐거운 이유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풀은 땅에 붙고, 뿌리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리 추워도 쫄지 않는 풀들에게 박수.
3. 아재체 기사
그간의 경험과 기록을 믿고 덜컥 연재를 시작했다. 막상 지난 일기를 들추어 보니 큰일 났구나 싶었다. 적혀 있는 얘기들은 주말 농사 짓는 이들은 누구나 다 아는 흔하고 흔한, 유치원생 일기나, 초등생 독후감 수준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나만의 특별한 농사 기술이나 지혜가 없고 사유의 깊이도 형편없었다. 20년 넘게 삽질했다는 경험을 들이밀어 봐야, 겨우 그 이야기 하려고? 너보다 더 오래 삽질한 분들이 깔렸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서점에는 주말 농사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호객은커녕 흥행참패가 뻔했다. 꽃 그림을 덧붙이자고 생각했다. 본래 펜에 먹물 찍어 ‘비행산수’ 시리즈를 흑백으로 그려왔다. 컬러에 도전했다. 오일파스텔·드로잉펜·수채펜 같은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이용해 그렸다. 오일파스텔은 처음 써봤다.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그렸다. 양념으로 만화를 한 컷씩 끼워 넣기도 했다.
내 기사는 ‘아재체’다.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와 쌍벽을 이루는 아재는 뻔뻔하고 능글맞고 눈치코치 없는 꼴불견, 그래서 좀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다. 한술 더 떴다. 그래 나 아재여, 어쩔껴? 뭐 이런. 의뭉과 능청이 일상인 내 고향 동네 정서가 도움됐다.

배추는 무보다 추위에 강해 영하 5도에도 걱정없다. 물김치 할까, 된장국을 끓일까, 노란 속은 쌈 싸먹어야지.
4. 횡설수설
<삽질일기>는 정통 기사 문법에 맞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황당한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가끔은 횡설수설도 한다. 격주로 지면과 온라인을 번갈아가며 연재했다. 지면에 연재할 때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신문기사는 어떠해야 한다는 오랜 관성 때문이다. 온라인 기사는 그런 부담이 없다. 분량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사진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20장 넘게 올린 적도 있다.
대신 사진 설명에 신경을 썼다. 아직도 많은 사진 설명이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어디서 뭘 하느라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식이다. 기사에 있는 내용을 뽑아다 쓰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맛이 없다. 나는 사진 하나하나가 자기 완결성을 갖도록 했다. 사진마다 색다른 이야기와 정보를 넣었다. 그러다 보니 설명이 별도의 기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기사 형식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중간 어디 즈음에 있을 테다. 넥타이를 매면 갑갑하다. 다양한 형식이 풍부한 내용을 담보한다.

서리 맞아 비실비실한 레드치커리 밑동을 잘랐더니 자주색 파도가 일렁인다.
그렇고 그런 삽질 얘기가 지겨워서 여름 지나며 텃밭을 벗어났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귀를 기울였다. SNS를 이용했다. 모르거나 막히는 일은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도심 옥상 텃밭을 취재하고 싶은데 아는 분이 없어서 페이스북에 광고했다. 삽시간에 제보가 쏟아졌다. 그중에서 입맛이 가장 당기는 분이 있었다. 예상대로 사양했다. 아는 분들에게 청탁성 압력과 부탁을 해서 인터뷰를 했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은 진모영 감독 댁이다.

겨울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갈라지고 썩은 무가 꽤 나왔다. 아까워라. 밭 쥔장네 무는 하나같이 깨끗하다. 비결을 물었더니 비밀이란다. 막걸리 한병이면 묻지않아도 술술 불 텐데 뭘 그러셔.
‘붥덱’ 조영학 선생네 좀비농장, 토종 씨앗을 대물림하는 우목골 부부 이야기도 SNS 덕에 쓰게 됐다.

큰 기대 하지 않고 추석 지나 꽂아놓은 쪽파. 줄기는 시원찮지만 아랫도리는 그래도 먹을 만하게 자랐다.
지면을 통해 보고 싶은 꽃을 공모받아 그리기도 했다. 쌍방향 소통이 뭐 거창한 게 아니다.

기억 나시나요? 9월21일자 지면에 실은 그림. SNS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꽃을 신청받아 그렸다.
연재물 중 가장 많이 본 기사는 ‘쟁기질하는 김태희, 가슴 쓸어내린 아저씨’다. 44만 클릭이 넘었다. 좋아요. 237개, 싫어요 265개 찍혔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역시 제목이었다. 슈퍼스타 김태희가 쟁기질이라니, 엉큼함의 대명사 아저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다니, 뭐 이런 말초적인 단어가 눈을 끌었을 테다.
재미있거나 유익했다고 생각한 분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힐링 되는 기분이에요
-악다구니 속 반가운 휴식
-김태희·전지현이 정말 온 줄 알고 깜박 속았습니다
낚였다고 생각한 어느 분은 이렇게 달았다.
혼수상탠가?
기사 내용과 동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제목으로 호객행위를 한 건 맞다. 반성합니다. 하여튼 암만 훌륭한 기사라도 제목이 시원찮으면 독자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세태가 부박해서 그렇다고 툴툴대는 이들도 있겠지만, 빈껍데기 기사에 섹시한 제목을 달아 장사를 하는 언론도 할 말은 없다. 생각 거리 많고 품이 엄청 들어간 기사는 묻히고, 이거 뭐야 하며 욕 나오는 기사가 랭킹에 올라가는 현실은 문제가 많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쓴 기사도 제목에 따라 클릭 수가 출렁이는 현실을 보면 씁쓸하다. 그래도 제목은 잘 뽑고 볼 일이다.

갈비뼈를 드러내기 시작한 밭 옆의 산. 두릅나무와 머위를 찾아보세요.
눈팅만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독자들이 대부분이다. 페북에는 ‘좋아요’를 눌러도 기사를 읽고도 ‘좋아요’는 누르지 않는다. 누르기 불편한 시스템 탓도 있겠지만 표시가 없으면 나는 누가 왔다 갔는지 알지 못한다. 접속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니는 분들도 꽤 있다. 그런데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를 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내 일거수일투족에 훤하다. 유리 상자 속에 갇힌 기분이다. SNS가 바꾼 풍속도인데, 내가 한 일을 네가 알고 쟤도 알아서 결국은 모두가 아는데 나만 모르는 세상이 됐다. 잠깐의 크로스 체크만으로도 거짓말이 들통나니 SNS가 투명한 세상을 앞당기기는 했지만.
그런데 갈수록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건 뭐람.

밭 옆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호미. 몇 주 쓰지 않았더니 벌써 녹이 슬었다. 내년에 다시 보세.
남자들, 특히 아저씨들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생매장되는 세상이다. 길거리에서 시선 관리 잘못하면 망신당한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웬만하면 앉지 않는다. 서서 있을 때는 만세 부르는 자세로 손잡이를 꼭 잡고 천장을 보거나 눈을 감는다. 나 같은 아재가 여성들과 대적한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대파밭을 폐허로 만들어도, 토란을 빼앗겨도, 비름을 훑어가도 머리만 긁적거린다. 남성멸종시대가 이미 깊어진 증거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의 억척이 우리 씨앗을 지켜왔다. 농촌의 독거노인들은 대부분이 할머니들이다. 남자들은 젊어 고된 노동과 술 담배에 절어 여성들보다 일찍 생을 접는다. 혼자 남은 할머니들이 농사를 지으면 씨앗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줌마 만세, 할머니 만만세.

수확을 마치고 주인이 떠난 밭들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이처럼 쓸 만한 고추와 오이 지지대를 내버리고 가는 집들이 꽤 있다. 갈무리해서 내년에 써야지.
9. 댓글 열전
인터넷 기사나 SNS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SNS에 달린 댓글들은 하나같이 우호적이다. 다들 아는 사람이니 그렇겠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태반이 비아냥이다. 이유 없는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정도가 심해 관리자가 삭제하기도 한다. 익명이 만든 그늘이다. 그래도 때로는 뭉클하고 재미도 있다.
-충실한 농사꾼이셨던 선친이 생각납니다. …심근경색으로 작별인사도 못 했던 아버지. 늘 반질반질하던 삽이 생각납니다. (clou****)
-아따 이 양반 삽 쪼깨 쓸 줄 아요. 하지만 연장의 최고봉은 역시 곡괭이지라. 나가 군대 별명이 곡괭이 K지라. 여긴 바위 지역이라 사단장 형님도 안 된다는데 하루 만에 곡괭이로 참호 파 부럿당께. 사단 표창도 그때 받았지라. (tick****)
-글 보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일 같아서! 저는 서울 시내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 텃밭 농사짓습니다. 6층 아줌마네도 짓지요. 이 아줌마네 상추를 몇 년째 2층 할머니가 막무가내로 따가요. 몇 년 전에 2층 할머니가 한 번 상춧잎 좀 따 먹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 했는데, 이게 묻지도 않고 해마다 무조건 올라와 따 가요. ㅋㅋ 저번에도 아파트 옥상에서 2층 할머니와 마주쳤어요. 6층 아줌마가 화내니 그만하시라고 제 것 따 드렸는데도 기어코 6층 상추를 다 따서 가져갔어요. 내려가면서 하시는 말! '아저씨는 심고 물주고 나는 따 먹고. 파는 것은 농약 쳐서 못 먹어!' 하고 내려가더라고요. 다음 날 6층 아줌마 폭발! 다시는 상추 안 심는다고 상추들을 뿌리째 뽑아서 아파트 옥상 바닥에 패대기쳤지요, ㅋㅋㅋ왜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망가지는지 에휴~~~(조****)

여름에 떨어진 고수 씨가 다시 싹텄다. 겨울에도 키가 크나 보려고 몇 포기를 뽑아다 베란다 화분에 심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에게 당했다…’ 기사를 보고 독자들끼리 댓글 싸움이 붙기도 했다.
▶듬뿍 심어 골고루 나눠라 →위선적인 글을 삼가라 →그대 댓글을 보면 다혈질 분노조절 장애 기미가 →이 양반은 꿈속을 헤매고 있나.
▶교회가 도둑소굴→사람 모인 곳이니 한계가→마귀소굴이다

파장. 삽자루도 겨울방학이다.
-안 기자, 글은 잘 쓰는데 "데"와 "대를 구별 못 하시네. 초입과 마지막 부분 두 군데에 "데"인데 "대를 썼네. 젊은 세대들이 잘 틀리는 부분이지. (leet****)
이분은 ‘독한 놈 바랭이’ 기사를 보고 오류를 지적했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그렇게 날 쥐 잡듯 하더니 아주 쌤통이야. 아재도 참 집요하대. 어떻게 내 급소를 알고 곳곳에 칼집을 내더구먼.
-듣고 나니 서늘하지? 석 달 전에 밭 쥔장이 밭둑에 약을 쳤는데 독하긴 독하대. 그래도 견딜만하던걸. 혹시 내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소문나면 멸종당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데’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나중에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이는 말로 ‘-더라’와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 비해, ‘-대’는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때 쓰인다.
정신없이 기사를 쓰다 보면 이런 실수가 나온다.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욕서 배달된 하소연 1탄’ 기사에는 엉뚱하게도 에로영화 배우 ‘하소연’의 활약을 알려주는 아래와 같은 댓글이 붙었다.
-(하소연) 에로영화 배우로 활동하면서 청순한 외모로 독보적 원탑을 달렸던 인물. 출연작: 그게 맨입에 되니, 깃발을 꽂으며, 날 건들이지 마, 도망자, 동거, 로또걸 1,2, 만덕이의 보물상자, 말할 수 없는 비밀, 밤의 황제, 서브웨이, 십카드, 야망, 여조교, 열번째 서비스, 오빠의 불기둥, 욕정의 웨딩드레스, 완전한 사육, 우연, 이쁜이, 이태원 버스, 착한 아이, 하지마, 해우소, 5분의 기적, 하소연의 소녀의 성. (kils****)
-미국, 캐나다에서 전라도(노빠)를 보면 꼭 CIA에 종북이라고 신고하세요. 추방당합니다. (문****)
농사 이야기에 지역감정을 들고나온 이분은 또 뭔지.
‘강남역 사거리에 나타난 냉장고 바지 아저씨’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붙었다.
-멍멍멍! (lyj1****)
개소리하지 말라는 건지, 개처럼 즐겁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SNS 답글은 어디까지나 개그가 많다.
-삽자루 옵화 없으면 중앙일보 끊으려구요.(한송이)
-호구 혁명 이룩하여 얼간이공화국 수립하자(조영학)
-안화백 구라가 절정이네(성백유)
-글도 참 맛깔나기도 하지 말입니다. 이렇게 재미난 걸 JTBC는 <냉장고 바지 삽형의 떼굴떼굴 세상읽기> 코너 마련 안하고 뭐한댜. (박전애)
-(책) 계약하자…5천원, 현찰로 주려고 준비해놓았슈~~~~(권혁재)

마지막 고추. 고생하셔. 나는 집에 가.
10. 굳이 주말농장을 하시겠다면
<삽질일기>에 현혹돼서, 주말농장 할 만하네, 내년에는 신청해 해볼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속지 마세요. 책임 못 집니다.
나는 그저 재미있는 소재, 웃기는 에피소드, 장밋빛 넘치는 이야기를 골라 썼을 뿐이다. 4월, 5월에는 신난다. 파릇하니 싹이 트고 햇볕 따스하고 사방에 꽃 피고. 6월도 견딜 만하다. 장마철부터가 문제다. 햇살 뜨거워지지, 풀은 무섭게 크지, 피 맛을 본 모기는 야차처럼 달려들지, 일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지….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이 꼴을 보자고 삽을 들었나, 무농약 채소 따위는 안 먹어도 좋아, 나 돌아갈래, 하며 초보자들은 대개 이쯤에서 지옥도가 펼쳐진 밭을 탈출한다.
그래도 꼭 삽을 들어야겠다는 분이라면 준비해야 한다. 텃밭 복덕방을 연 구청이나 시청이 많으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리 확인할 것. 넋 놓고 있다가 신청 기간 놓치면 한해를 땅 치며 지내야 함. 경쟁률이 제법 되니 당첨은 운에 맡기고.
사유지를 분양하는 이들도 많으니 수소문해서 알아두면 더 확실하다. 주말 농사짓는 친구에게 딱 달라붙으면 정보가 술술 나온다.
내가 권하는 방법은 이렇다. ▶집 가까운 곳에 ▶시작은 작게 ▶그도 부담되면 베란다 화분에 상추 모종 몇 포기부터.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 4끼는 먹지 못한다.

낫의 날을 세워 연장 배낭에 넣었다. 다시 꺼내는 날이 내년 농사 시작하는 날이다.
손바닥만 한 주말농장에서 깨작거려온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해 내내 뼈 빠지게 일해도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땅에 기대어 흙을 일구며 사는 농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눈물과 땀이 내 피와 살이 됐습니다.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