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전쟁사에서 불리한 전세를 뒤집어 승전한 사례가 꽤 많다. 그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전쟁의 안개’ 속에서도 아군을 승리로 이끈 요소는 대개 사람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의 무대인 미드웨이 해전이 그렇다. 미드웨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환초다.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미국이 일본을 어떻게 이겼는지 사람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부하를 믿었던 니미츠 vs 못 믿었던 야마모토
![1942년 6월 5일 미드웨이 해전를 다룬 영화 ‘미드웨이’에서 일본 항공모함이 미국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폭발하고 있다. [사진 누리픽쳐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1/22/09efbe9b-51d5-42d2-aeb2-24871327a0c5.jpg)
1942년 6월 5일 미드웨이 해전를 다룬 영화 ‘미드웨이’에서 일본 항공모함이 미국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폭발하고 있다. [사진 누리픽쳐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니미츠가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았고, 참모들은 유임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니미츠는 자신이 직접 뽑은 지휘관을 끝까지 믿었다. 일본의 공격 목표를 두고 니미츠의 참모와 해군본부의 의견이 갈렸다. 그는 미드웨이로 파악한 자신의 참모를 지지했다. 어니스트 킹 해군참모총장은 프랭크 ‘잭’ 플레처 제독이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니미츠는 플레처를 미드웨이 해전에 내보냈다. 니미츠는 미드웨이로 떠나는 지휘관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감내할 수 있는 위험만 감내하라. 아군 전력(항모)을 적에게 줄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라.”
![당시 공격을 피하는 일본 항모. [사진 의회 도서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1/22/3bcb36b5-3555-4102-9939-39dff4fa9445.jpg)
당시 공격을 피하는 일본 항모. [사진 의회 도서관]
야마모토는 작전의 세부적인 사항을 챙겼다. 야마모토는 미드웨이 해전에 출정하는 나구모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미드웨이 근처에 미국 함대가 있을 수 있다. 미국 함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항공 전력의 절반을 남겨둬라.” 나구모는 야마모토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전황이 시시각각 바뀌었는데도 임기응변할 수 없었다. 니미츠는 전투에 앞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야마모토는 그렇지 못했다.
전의에 불탄 미국 vs ‘승리병’에 걸린 일본

니미츠
그런데도 미국은 악에 받쳐 일본에게 덤벼들었다. 미국의 공격대는 전투기의 호위를 받지 못했다. 특히 어뢰로 함정을 공격하는 뇌격기는 속도가 느려 피해가 컸다. 미국 항모 3척에서 출격한 뇌격기 41대 가운데 4대만이 모함으로 돌아왔다. 사지로 뛰어들어가는 임무였지만, 미국 뇌격기 조종사들은 의연했다. 추락하는 미국의 B-26 폭격기 1대가 돌진했지만, 일본 항모가 간신히 피했다. 일본은 미국의 전의에 상당히 놀랬다.

야마모토
미드웨이의 미군 기지에선 방어를 보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미드웨이를 치려는 자신들 작전을 미국이 눈치챘다고 생각조차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 해군 참모는 이렇게 평가했다. “만일 우리가 미드웨이에서 재앙을 용케 피했을지라도, 아마 42년 안에 태평양 어디에선가 그런 운명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의 승부령은 결국 사람이었다. 한국은 지금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놓지 않고 있고, 주변 열강은 군사력을 늘리고 있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결정했지만, 미국과 이란 사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니미츠와 같은 지휘관과 투지가 강한 장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철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