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마크 밀리 합동참모의장과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AFP=연합]](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8/18/9fa42922-972a-4bda-b313-53594aa2d9c2.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마크 밀리 합동참모의장과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AFP=연합]
발단은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군사 전문 온라인 매체인 디펜스원에 올라온 기고문이다. 미국 육군 예비역 장교인 폴 잉링과 존 네이글이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의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을 썼다.
부제는 ‘국내외의 모든 적들(All Enemies, Foreign and Domestic)’이다. 이는 미 합참의장 취임 선서의 한 구절에 비롯했다. 미 합참의장은 “국내외의 모든 적에게 맞서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지킨다”고 맹세한다.
기고자들은 군 통수권자이자 최고사령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해 권좌에서 내려오길 거부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때 밀리 의장이 미군의 최선임으로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기고자들의 주장이다. 하나는 미군을 지휘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이 가져올 헌법의 위기를 막고, 정권 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대선 불복)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앵커인 크리스 월리스가 “품위 있는 패자가 되겠냐”고 묻자 “지켜봐 달라. (상황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물론 기고자들은 직접 밀리 의장에게 쿠데타를 벌이라고 권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밀리 의장이 미군을 동원해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내쫓는 행위 자체를 쿠데타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글은 당장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은 건국 이후 몇 차례 군사 쿠데타 시도는 있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군대는 정부의 권위나 결정에 따라야 하는 문민통제의 원칙이 미국에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주방위군이 제지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 시위에 미군을 동원하는 데 대한 정치적 찬반이 갈린다. [AFP=연합]](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8/18/bca6432d-68ff-4216-830d-dc20b8d24934.jpg)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주방위군이 제지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 시위에 미군을 동원하는 데 대한 정치적 찬반이 갈린다. [AFP=연합]
디펜스원은 잉링과 네이글에 반대하는 글도 함께 실었다. 미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코리 셰이크 센터장과 짐 골비클레먼트 국가안보연구소 책임 연구원은 기고문에서 “잉링과 네이글의 글은 매우 무책임하다”며 “미국 국민의 군과 군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적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프레드 카플란은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에서 “디펜스원의 기고자는 군인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환상을 품었으며, 민주주의에서 민간과 군부의 관계를 오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질 경우) 2021년 1월 20일 자정(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대통령 경호실은 그를 버리고, 핵 발사 코드는 바뀌고, 그가 임명한 각료와 대사의 권한은 끝날 것”이라며 “전 미국의 중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서 조 바이든 새 대통령에게로 옮겨간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미 국방부 브리핑에서 조너선 호프먼 대변인은 ‘대선 이후 소요가 일어날 경우 군이 민간 당국을 도울 준비가 돼 있냐’는 질문을 받고선 “우리가 지킨다고 선서한 미 헌법에 따르면 정치적이나 선거 관련한 분쟁에서 미군의 역할이 없다”고 답했다.
또 미 합참의장은 한국 합참의장과 달리 군령권(군사 명령을 내리는 권한)은커녕 군정권(편제ㆍ인사ㆍ군수 등 군사 행정에 대한 권한)도 없다. 미 합참의장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사이에서 군사적 조언을 하는 역할만 갖고 있다. 그게 미국의 법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