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가는 붉은 땅벌 ‘6초의 기적’ 다시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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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 기자 사진 박린 기자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하키의 부활을 꿈꾸는 장종현(오른쪽)과 신석교 감독. 김현동 기자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하키의 부활을 꿈꾸는 장종현(오른쪽)과 신석교 감독. 김현동 기자

 
필드 하키는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잇따라 금메달을 따냈다. 2010년대 들어선 침체기다. 하키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남자 대표팀 선수들은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6초의 기적’을 쏴야죠.”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를 찾은 한국 남자하키 대표팀의 디펜스 장종현(38·성남시청)과 신석교(51) 감독은 ‘6초의 기적’이란 표현을 썼다.

신석교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하키 대표팀은 지난해 12월 말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아시아 챔피언스 트로피’ 결승전에서 일본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1-3으로 뒤진 4쿼터 종료 5분 전, 장종현이 한 골을 만회했다. 장종현은 또 경기 종료 6초 전 축구 코너킥과 비슷한 ‘페널티 코너’ 기회에서 대포알 같은 슛을 터뜨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한국은 ‘(페널티) 슛아웃’ 끝에 4-2로 승리하며 아시아 6강이 겨루는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페널티 코너 전문 슈터인 장종현은 대회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장종현은 “7골이 페널티 코너에서 나왔다”고 했다. 신 감독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 받으려면 페널티 코너 성공률이 30~40%는 돼야 한다. 장종현은 3개 중 한 개를 넣었다”고 했다.


독일, 네덜란드와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뛰었던 장종현은 불혹을 바라보는 베테랑이다. 2003년부터 A매치 300경기에 출전했다. 신 감독도 1989년부터 2002년까지 200경기 넘게 A매치를 치렀다. 신석교 감독은 원조 ‘페널티 코너 스페셜리스트’다.

신 감독은 “종현이는 카본 스틱을 밀어 쏘는 푸시슛, 플릭슛을 잘한다. 난 선수 때 무거운 나무 스틱으로 강하게 히트 했다”고 했다. 신 감독은 “난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코만도’라 불렸다”며 웃었다. 장종현은 “난 ‘장바스’라 불린다. 페널티 코너 성공률이 50%에 달하는 파키스탄 선수 아바스에 내 성을 합한 것”이라고 했다.김현동 기자

신 감독은 “종현이는 카본 스틱을 밀어 쏘는 푸시슛, 플릭슛을 잘한다. 난 선수 때 무거운 나무 스틱으로 강하게 히트 했다”고 했다. 신 감독은 “난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코만도’라 불렸다”며 웃었다. 장종현은 “난 ‘장바스’라 불린다. 페널티 코너 성공률이 50%에 달하는 파키스탄 선수 아바스에 내 성을 합한 것”이라고 했다.김현동 기자

 
하키는 축구처럼 팀당 11명이 뛴다. 신 감독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위퍼. 장종현도 대표팀 스위퍼로 뛴다. 신 감독은 “축구로 치면 홍명보 선배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최후방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간과 길을 막는다. 원래 사이드 풀백이었던 종현이를 이번 대회에서 스위퍼로 변경시켰다. 피딩(볼 배급)이 좋고, 삽으로 뜨듯 공을 하늘로 ‘롱 스쿱’하는데 능하다. 경기장이 100야드인데 상대 서클 근처까지 공이 70야드 정도 날아간다. 축구에서 중앙 수비수가 한 방에 골대까지 연결하는 셈이다. 빌드업(공격 전개)하다 뺏기면 역습을 당할 수도 있는데 공을 멀리 날려 보내면 상대 프레스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원래 전·후반 35분씩이었던 하키는 2015년부터 농구처럼 4쿼터제(15분씩)로 바뀌었다. 핸드볼처럼 선수 교체도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장종현 같은 노장도 체력을 안배하면서 뛸 수 있다. 옛날에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불암산을 오르내리며  ‘악’ 소리 나는 체력 훈련에 주안점을 뒀지만, 최근에는 전술이 더 중요해졌다.

남자하키대표팀 신석교(오른쪽) 감독과 장종현. 김현동 기자

남자하키대표팀 신석교(오른쪽) 감독과 장종현. 김현동 기자

 
장종현은 “신 감독님이 카멜레온처럼 상대 팀에 따라 변하는 맞춤형 전술을 펼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아시아 챔피언스 트로피 대회는 한국이 2년 만에 출전한 국제 대회였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A매치 경력이 10경기도 안 되는 선수가 14명이나 됐다. 그런데 이들이 ‘사고’를 쳤다. 세계 16위 한국이 1차전에서 세계 3위 인도와 2-2로 비겼다.

신 감독은 “인도전을 한 달 이상 준비했다. 0-2로 끌려가다가 4쿼터에 중앙에서 볼 배급하는 선수 2명한테 압박을 가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키스탄과의 4강전에선 원톱을 투톱으로 바꿔 과감하게 중앙 공격을 했다. 다양한 전술로 파키스탄을 공략한 결과 6-5로 값진 승리를 따냈다.

신 감독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사활을 걸고 올인하겠다고 했다. 장종현은 또 한 번 ‘6초의 기적’을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김현동 기자

신 감독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사활을 걸고 올인하겠다고 했다. 장종현은 또 한 번 ‘6초의 기적’을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김현동 기자

 
붉은 유니폼을 입어 ‘붉은 땅벌’이라 불린 한국 하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당시 얼굴부터 발목까지 까맣게 그을린 채 스틱을 들고 필드를 누비는 선수들 모습에 국민들이 열광했다.

남녀 하키는 2010년대 들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남녀 대표팀이 동반 탈락해 도쿄올림픽에 못 갔다. 이에 앞서 2018년 아시안게임에선 40년 만에 노메달에 그쳤다. 선수층이 엷은 데다 대한하키협회의 재정난까지 겹쳐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 실업팀은 상무를 포함해 4개(성남시청, 인천시체육회, 김해시청)로 줄었다. 등록 선수는 남녀부 학생과 성인을 합쳐 1250명, 그중 실업 선수는 220명에 불과하다. 뉴질랜드는 등록 선수가 4만5000명으로 한국의 36배가 넘는다. 인기 없는 하키를 꺼리는 분위기다.

장종현은 “선수가 모자라 선발 11명을 못 채우는 중학교 팀도 있다”고 했다. 신 감독은 “그래서 이번 우승이 더욱 값지다. 신문에 우승 광고까지 실렸다. 현장 지도자들이 내게 ‘고맙다’고 연락해왔다. 하키가 국제 대회에서도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이란 걸 어린 친구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뿌듯하다”며 “2010년대 들어 유튜브에 ‘하키’를 검색하면, ‘아이스하키’가 먼저 나온다. 우리가 ‘원조’인데, 자주 우승해 아이스하키를 밀어 내겠다”고 했다.

 
지난해 이상현(44) 태인 대표가 대한하키협회장을 맡은 뒤 형편이 나아졌다. 장종현은 “해외 전지훈련도 하고, 하키 강국과 A매치를 자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한국은 일본·파키스탄·말레이시아·중국 등과 함께 아시아 6강으로 꼽힌다. 인도는 세계하키연맹 회장을 배출했던 전통의 강호다. 올림픽에는 12개국이 출전하는데 개최국과 대륙별 챔피언 5개국은 자동 출전한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올림픽 출전이 자동 확정된다.) 나머지 6장은 세계 상위랭커끼리 맞붙어 그 결과에 따라 배정된다.

장종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또 한 번 ‘6초의 기적’을 만들어 내겠다. 선배들이 이뤄낸 ‘붉은 땅벌’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종현
출생: 1984년생(38세)
체격: 1m77㎝, 70㎏
소속팀: 성남시청
포지션: 스위퍼
주요경력: 2004, 2008, 2012 올림픽 출전
A매치: 300경기(2003~)
별명: 장바스(파키스탄 슈터 아바스 빗대)
신석교 감독
출생: 1971년생(51세)
체격: 1m80㎝, 90㎏
소속팀: 남자하키 대표팀 감독, 성남시청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 스위퍼
주요경력: 1994년, 2002년 아시안게임 금
A매치: 200경기 이상(1989~2002)
별명: 코만도(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남자하키 주요경기 성적
1986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5위
2000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최종 예선 탈락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4강행 실패
2020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 탈락
2021 아시아 챔피언스 트로피 우승
◆ 필드 하키
스틱으로 공을 상대 골문에 넣어 승패를 겨루는 경기. 11명이 한 팀을 이뤄 1~4쿼터 15분씩 진행한다. 아이스하키와 구별하기 위해 ‘필드 하키’라고도 한다. 1908년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다.
남녀 하키, 올림픽 은 3 아시안게임선 금메달 9
1980년대 한국 남녀 하키 대표팀은 ‘붉은 땅벌’로 불렸다. 태릉선수촌 하키장에 인조잔디가 깔린 게 85년쯤인데, 하키팀은 그 전까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맨땅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뛰었다.

여자하키는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서독, 캐나다, 영국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경기장을 찾은 결승전에서 호주에 0-2로 져 아쉽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또 한 번 은메달 신화를 썼다.  

한국 남자하키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세 차례나 목에 건 강호 파키스탄을 준결승전에서 꺾었다.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선 1-3으로 끌려가다 3-3으로 쫓아갔지만, 아쉽게 승부치기 끝에 졌다.

한국 남녀 하키는 1986년 서울 대회 이래 아시안게임에서 9개의 금메달을 땄다. 한국 하키의 전성시대가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