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보안 노리는 해커. 챗GPT 이미지 생성
SK텔레콤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 정보 해킹 사건 여파가 큰 가운데, 국내 대기업들의 정보보호 체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현대차에선 임직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고, CJ올리브네트웍스도 인증서 파일이 해킹당했다. 개별 기업의 문제라기보다 산업 전반적으로 정보보호 현황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중앙일보는 12일 시가총액 상위 10대 그룹(농협 제외)의 정보보호 의무공시 자료를 전수 분석하고, 주요 계열사 12곳을 설문조사했다. 대기업들의 정보보호 투자액과 인력 규모는 커졌지만 ‘구조적 허점’은 여전했다.
① 투자액 늘었지만…IT 투자 대비 ‘제자리걸음’
다만 정보기술(IT) 투자 중 정보보호 투자의 비중은 2023년과 2024년 모두 5.8%로 변화가 없었다. 절대액은 늘었지만 정보보호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가 확대됐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글로벌 보험사 히스콕스의 ‘사이버 보안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IT 대비 정보보호 투자 비중은 2023년 기준 평균 26%로, 한국의 4.5배 수준이었다. 독일(24%)·영국(23%)·프랑스(22%) 등 다른 선진국도 한국보다 높았다.

정근영 디자이너
② 3명 중 1명 ‘외주’ 의존…“내부 전문가 키워야”
외주 비중이 높다고 보안이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비상시 체계적인 대응을 위해선 내부 전문가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2017년 1400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 사고는 외주업체 소속 서버 관리 직원의 실수로 발생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보안 인력을 외주로 주는 경향이 있는데, 기업 소속감이나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며 “보안 사고 발생 시 책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내부 인력 육성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③대기업 CISO 4명 중 1명은 임원 X

정근영 디자이너
그룹별로 삼성(12개사)과 LG(10개사)는 각 사 CISO를 전부 임원급으로 선임하고 있었다. SK는 1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15개사가 임원급이었다. 반면 신세계(60%), HD현대(57.1%), 롯데(55.6%), GS(40%) 등은 상대적으로 CISO가 임원급이 아닌 비율이 높았다.
CISO를 겸직으로 두는 계열사는 전체의 72.4%인 63곳이었다. 대부분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최고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를 겸직하는 경우였지만, 보안 강화를 위해선 CISO에 권한을 더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염흥열 교수는 “CISO를 최소한 임원급으로 둬야 정보보호 분야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고,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설문 “내년 투자·인력 모두 확대”

6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발층에 마련된 SK텔레콤 유심 교체 창구에서 여행객들이 유심을 교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김형중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석좌교수는 “정보자산 유출은 산업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언제든 유출될 수 있다는 전제로 중요 정보는 아예 해시값으로 저장하거나 원형으로 보관하지 않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인증제 개편, 처벌 수위 높여야”
처벌 수위를 상향하고 고객 권리를 강화하는 등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소영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 기업들이 정보보호 관련 법을 잘 지키는 이유는 손해배상 제도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도 기업들이 피해 조치에 대해 책임과 경각심을 가지도록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을 확대하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도 “단순히 투자액과 인력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고, 경영진이 보안을 위한 예산을 비용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