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올림픽에서 KBS 해설위원으로 나선 이상화. 베이징=김효경 기자
13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중계하던 이상화(33) 해설위원은 고다이라 나오(36·일본)의 레이스를 지켜보며 눈물을 터트렸다. 2018 평창 대회 금메달리스트 고다이라는 17위에 머무르며 2연패에 실패했다. 2020~21시즌만 해도 이번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에린 잭슨(미국)과 경쟁했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불과 20m 거리에서 레이스를 지켜본 이상화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뒤 만난 이상화는 눈물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그에게 취재용 사진을 부탁하자 "퉁퉁 부었는데…"라고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이상화는 "나오 선수 스타트 첫 발이 좋았다. 그런데 중간부터 흐름이 끊어졌다. 상위권에 들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고다이라가 세 살 연상이지만 둘은 오랜 친구다. 2006년 월드컵에 출전한 고다이라에게 이상화가 먼저 말을 걸었고, 그때부터 친해졌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다. 한국에서 대회가 열릴 땐 함께 온천에 가기도 하고, 이상화가 택시비를 내주기도 했다.
![고다이라(왼쪽)와 이상화 [평창겨울올림픽 인스타그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4/0eb960d4-c958-454b-9c88-c22907f73b54.jpg)
고다이라(왼쪽)와 이상화 [평창겨울올림픽 인스타그램]
이상화는 항상 고다이라를 '그 선수', '그 친구'라고 불렀다. 워낙 둘을 라이벌로 묶다보니 "그 선수와 비교는 그만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석에선 친하지만 경기에서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이 엿보였다. 결과는 고다이라의 승리였다. 고다이라가 금메달, 이상화는 은메달이었다.
뜨거운 레이스보다 더 뜨거운 건 경기 뒤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고다이라는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터트린 이상화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어깨동물를 한 채 경기장을 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AP통신은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 줬다"고 평했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친 뒤 안아주는 고다이라.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4/48792aca-87f5-462a-a77f-e8a21050045a.jpg)
2018 평창올림픽에서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친 뒤 안아주는 고다이라. [연합뉴스]
이상화는 "평창의 그 장면은 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고다이라의 레이스여서 지켜보기 힘들었다. 대회 전 고다이라를 만났는데 나에게 '다시 한 번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번 챔피언은 영원한 챔피언'이라고 용기를 줬다. 나처럼 2연패를 하길 바랐는데 아쉽다"고 했다. 고다이라는 경기 뒤 "상화가 대회 전 메시지를 보내줘 마음이 든든했다. 나오라면 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해줬다"며 "상화가 2연패 했을 때처럼은 잘 안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이상화의 눈물은 큰 화제가 됐다. 요미우리 신문은 14일 '이상화의 눈물에 감동 커져… 우정에 국경이란 없다'는 제목의 기사로 둘을 조명했다. 경기 뒤 일본 취재진이 이상화에게 다가와 "고다이라 선수에게 어떤 말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13일 오후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에서 황대헌이 미끄러진 뒤 캐나다 스티븐 뒤부아에게 사과하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뒤부아는 11일 열린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황대헌의 뒤만 보고 따라갔더니 은메달을 땄다"는 말을 했던 선수다. 황대헌은 경기 뒤 "캐나다 선수에게 사과를 했다. 추월 시도도 안 해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끝내기보다 끝까지 시도하고 실패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드밴스를 받아 결승에 오른 뒤부아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내에서도 메달 획득 실패에 대한 실망보다는 매너 있는 행동을 칭찬하는 여론이 더 많았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승리'가 아니라 '노력'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스포츠의 모습을 이상화와 황대헌이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