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된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14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 인근 트레이닝홀에서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피겨 천재'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이고도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출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금메달을 따도 포디움에 올라 메달을 받을 수는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4일 성명을 내고 "발리예바가 피겨 여자 싱글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하면, 플라워 세리머니(간이 시상식)와 메달 수여식을 모두 열지 않겠다. 발리예바 사건이 마무리된 뒤 관련 선수들과 협의해 품격 있는 메달 수여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발리예바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동료들과 함께 딴 피겨 단체전 시상식 역시 무기한 연기된다.
IOC는 또 "발리예바가 15일 쇼트프로그램에서 상위 24위 안에 들어 17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한다면, 공정성을 위해 쇼트프로그램 25위 선수도 프리스케이팅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ISU에 요청했다. '출전해선 안 되는 선수'가 출전함으로써 다른 선수가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암시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된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14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 인근 트레이닝홀에서 공식 훈련을 한 뒤 미소를 지으며 링크를 빠져나가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 당시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협심증 치료제인 트리메타지딘은 운동선수들의 신체 효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인정돼 2014년 1월 도핑 금지약물로 지정됐다.
검사 결과는 샘플 채집 후 한 달 반이 지난 이달 8일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에 통보됐다. RUSADA는 결과 통보 후 발리예바에게 잠정적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발리예바가 이의를 제기하자 하루 만에 징계를 철회했다.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즉각 "RUSADA의 징계 철회가 부당하다"며 CAS에 제소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긴급 청문회를 열어 장시간 논의한 끝에 IOC와 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제기한 이의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CAS는 "도핑 위반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는 게 의무 조항이지만, 이번 사례는 예외가 인정된다"며 ▲발리예바가 16세 이하(2006년 4월 26일생)라 반도핑법으로 보호되는 점 ▲올림픽 기간에 진행한 도핑 테스트 결과가 아니라는 점 ▲WADA가 도핑 결과를 46일 만에 통보한 점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된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14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 인근 트레이닝홀에서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이후 CAS의 결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32)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검은 이미지와 함께 영어로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준수돼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썼다. 김연아가 영어로 SNS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 건 지난해 12월 유니세프 창설 75주년 축하 이후 처음이다. 국제 스포츠계에 던지는 메시지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피겨 여자 싱글 대표 김예림(19·수리고)도 "대다수 선수는 이 일을 안 좋게 생각한다. 한 미국 선수와 대화했는데, (정상 출전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며 "나도 같은 생각이다. 발리예바의 연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CAS의 결정은)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