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탕스키의 영상 작품 '아니미타스'가 상영되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 맑은 풍경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의자에 앉아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 이은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bc4b55b0-4485-4856-adb8-5b8d44cd677e.jpg)
볼탕스키의 영상 작품 '아니미타스'가 상영되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 맑은 풍경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의자에 앉아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 이은주]
'미술애호가'로 소문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최근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고 SNS에 인증 사진을 올렸다. RM이 이곳에서 본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의 대규모 회고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4.4'. RM은 '기념비', '코트', '저장소:카나다', '유령의 복도' 앞에서 작품을 지켜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 4장을 공개했다.
볼탕스키 전시는 지난해 10월 개막한 이래 미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할 전시'로 꼽혀왔다. 요즘도 서울을 비롯해 각 지역 미술관 학예사를 비롯해 입소문을 들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이어 부산을 찾고 있다. 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총 43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작가의 첫 유작전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다.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14일 작가가 돌연 작고하면서 전시는 대규모 회고전인 동시에 유작전이 됐다.
볼탕스키는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사진과 설치미술, 사운드, 조명 등으로 집단의 역사와 기억, 애도와 추모 등을 집중적으로 다뤄온 작가다. 작가는 지난해 3~4월 미술관 측과 소통하며 출품작을 골랐고, 10여 차례의 영상회의를 통해 전시공간 구성과 디자인까지 정했다. 그러다 미술관 측에 "병원에 간다"고 알려왔던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평생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뤄온 작가가 직접 지은 전시 제목 '4.4'도 눈길을 끈다. '4.4'는 그가 태어난 해인 '1944년'을 뜻하는 동시에 인생을 4단계로 나눌 때 ‘생의 마지막 단계’라는 뜻이다. 결국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공들인 이 전시가 그의 예술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침표가 됐다.
"죽음은 현재다"라고 말한 작가
![볼탕스키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기념비 연작들. [사진 부산시립미술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6b3de396-6106-4420-96b2-0bfba76d75a7.jpg)
볼탕스키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기념비 연작들.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볼탕스키의 '기념비' 연작. 1986년. 금속 프레임, 전구, 80X118cm. 작가 소장. [사진 RM 인스타그램 화면]](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a014879b-965d-4f7f-b132-edc1288781f2.jpg)
볼탕스키의 '기념비' 연작. 1986년. 금속 프레임, 전구, 80X118cm. 작가 소장. [사진 RM 인스타그램 화면]
그는 일찍이 벼룩시장에 나온 모르는 가족들의 사진 앨범, 또는 신문에 난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조합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수집한 사진에 특별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익명의 다양한 얼굴 사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홀로코스트, 곧 죽음을 연상케 했다. 이후 볼탕스키는 사진, 양철, 옷, 전구 등 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며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유령의 복도' (2019)일부. 복도 양옆으로 커튼이 쳐 있고, 그림자 모양의 형상들이 나타난다. [사진 이은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6654b3c2-7dda-4c75-97c7-3169bdd86bcb.jpg)
'유령의 복도' (2019)일부. 복도 양옆으로 커튼이 쳐 있고, 그림자 모양의 형상들이 나타난다. [사진 이은주]
![황혼(Crépuscule),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전시 기간을 나타내는 165개의 전구는 매일 하나씩 꺼지게 설정돼 있다. 지나가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준다. [사진 이은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7a261632-d8ea-4fee-b5e4-bfb2b65eb920.jpg)
황혼(Crépuscule),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전시 기간을 나타내는 165개의 전구는 매일 하나씩 꺼지게 설정돼 있다. 지나가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준다. [사진 이은주]
![볼탕스키 작품 중 '유령의 복도' 앞에 선 RM. [사진 RM 인스타그램 화면]](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8d370f3b-ed36-43fe-b667-f140c05a96cf.jpg)
볼탕스키 작품 중 '유령의 복도' 앞에 선 RM. [사진 RM 인스타그램 화면]
거대한 벽면을 빽빽하게 옷으로 뒤덮고 전구를 밝힌 '저장소:카나다'(Réserve Canada)는 유대인 학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카나다'는 억류된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을 남겨 둔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으로, 볼탕스키는 1988년 캐나다 토론토 전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이후 발표한 산 모양의 검은 옷더미 작품 '탄광'은 아예 하나의 무덤을 연상시킨다.
영상작업도 남다르다. 러닝타임이 13시간에 달하는 '아니미타스' 화면엔 사막 들판에 마른 풀과 같은 줄기에 달린 수백 개의 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과 소리만 담겼다. 촬영 장소는 칠레의 아카타마 사막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 치하에 살해된 수천 명이 묻힌 곳이다.
사라지는 것과 기억하는 것
![볼탕스키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일부. 왼쪽으로 '저장소:카나다'가 보인다. [사진 이은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3b19a217-70e6-49a1-8f51-873a74e8c779.jpg)
볼탕스키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일부. 왼쪽으로 '저장소:카나다'가 보인다. [사진 이은주]
![아니미타스 (Animitas Chill), 2014, 영상, 건초, 말린 꽃. 작가 소장[사진 이은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a56c69f0-ea35-4d85-90aa-1f78984d6323.jpg)
아니미타스 (Animitas Chill), 2014, 영상, 건초, 말린 꽃. 작가 소장[사진 이은주]
![볼탕스키, 코트(The Coat), 2000, 코트, 전구, 100x200cm. 작가소장. [사진 부산시립미술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2/15/259a9b98-590a-4302-b37c-9fe1ca74cb3b.jpg)
볼탕스키, 코트(The Coat), 2000, 코트, 전구, 100x200cm. 작가소장.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는 볼탕스키라는 작가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얼마나 집요하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한때 존재했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희미한 사진과 이를 촛불처럼 밝히는 전구와 녹슨 상자들은 보는 이들에게 애틋함과 서글픔, 공포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찍이 작품에 옷과 전구, 녹슨 주석 박스 등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쓴 점도 눈에 띈다. 예술을 시각적 아름다움과 시장 가치로만 보는 전통적인 생각에 맞선 작업으로 읽힌다.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는 "볼탕스키는 장르와 장르를 결합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라며 "사진과 오브제, 오브제와 영상을 결합한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죽음을 성찰했다"고 말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볼탕스키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이 전시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성사될 수 있었다"며 "볼탕스키가 마지막 예술혼이 깃든 특별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2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