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배추씨 88세 생일 축하연 장면.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방배추, 딸 방그레, 박석무, 이재오씨.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08/c0d51ead-0014-4224-9766-582bcff51d1f.jpg)
지난 6일 방배추씨 88세 생일 축하연 장면.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방배추, 딸 방그레, 박석무, 이재오씨.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
'구라'는 거짓말이나 이야기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구라를 잘 치거나 걸쭉하게 풀어내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걸출한 구라가 없지 않았다. 국내 3대 혹은 한국 3대 같은 표현보다는 반드시 '조선 3대'라고 해야 어울리는 세 명. 백기완(지난해 타계)·방배추·황석영 세 사람이 조선 3대 구라로 통한다.
그 가운데 방배추(본명 방동규) 선생의 88세, 미수 축하연이 지난 6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1935년 북한 땅 개성에서 태어난 선생의 일생은 '낭만주먹'이라는 또 다른 별칭처럼 바람기와 물기가 함께 묻어나는 파란만장한 것이다. 선생은 경신고 역도부 '10대 어깨' 시절 백기완에게 "사나이가 천하를 호령해야지 사람을 두들겨?"라는 일갈과 함께 뺨을 얻어맞은 후 깨닫는 바가 있었다고 한다. 60~70년대 재야세력과 어울린 끝에 간첩으로 몰려 구속되고 악명 높은 이근안 경관에게 고문당했다. 그러는 와중에 몇 년을 파리에서 보냈고 돌아와 양장점을 냈다. 한 시절을 함께 한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경복궁 관람안내지도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노인 고용 선진 사례로 꼽힌다.
![1935년생 방배추씨. 젊어서 낭만주먹으로 통했다. 근육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08/ff17b16c-848e-439b-b25d-7a63f06f97d6.jpg)
1935년생 방배추씨. 젊어서 낭만주먹으로 통했다. 근육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
구중서·임헌영 문학평론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이부영·이재오·유인태·장영달 전 국회의원, 임재경·허술 언론인,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등 축하객들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질펀한 문화를 아쉬워하며 선생의 장수를 축하했다.
선생의 노익장은 여전했다. 박석무 이사장이 "앞으로 20년 더 사시라"고 건배사 하자 "38년은 더 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축하연 사회를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황석영은 역시 황석영이야. 왜 안 오시느냐고 좀 전에 전화했더니 아직 익산이라며 '9일 아냐?' 이러시더라고", 너스레를 떨자 "맹수끼리는 같이 있는 게 아니거든"이라고 받아쳤다. 몇 해 전 구라 경진대회에서 황석영이 패한 바 있다고 누군가 덧붙였다. 방배추 구라가 더 세다는 얘기다.
축하연은 '구라 논쟁'이 불거지며 흥을 더했다. YS 정부 시절 김정남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이 60년대 풍경을 소환하면서다. 복계 전 청계천에서 막노동하던 선생을 사상계 장준하 등과 찾아가면 "보통 사람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나 같은 노동자들이 내는 고통에 찬 '우웅~' 소리를 (똑똑한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선생이 다그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말이 곧 구라라는 것.
![무면허 화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오른쪽)이 직접 그림 그린 부채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08/d2958c77-4ecc-4138-a849-759f7d386bef.jpg)
무면허 화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오른쪽)이 직접 그림 그린 부채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채원희]
임옥상 화가, 박재동 화백이 그림을 선물하고, 무면허 화가 유홍준 전 청장도 손수 그림 그린 부채를 증정했다. 이 모든 과정을 선생의 딸 방그레씨가 상기된 채 지켜봤다.
누군가 말했다.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조합이 자리를 함께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