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 전시장에서 신작 '환희' 옆에 선 윤광조 도예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광조의 '환희'. 마치 두 손을 흙에 대고 삶에 경배를 올린 듯하다. [사진 가나아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0/99626f5a-c9d1-4168-a112-e10d8a960148.jpg)
윤광조의 '환희'. 마치 두 손을 흙에 대고 삶에 경배를 올린 듯하다. [사진 가나아트]
![윤광조, 심경(心經), 2020,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상감, 58cm. [사진 가나아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0/6add91ee-afc3-4191-b59e-310c9867253b.jpg)
윤광조, 심경(心經), 2020,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상감, 58cm. [사진 가나아트]
도예가 윤광조(76) 씨에게 팔이 말을 듣지 않은 지난 2년여 시간은 고통이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되뇌며 당차게 살아온 그이지만, 흙을 마음껏 만지지 못하는 시간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기회가 다시 왔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을 시작한 그는 최근 가마에서 나온 두 점의 작품에 '환희(歡喜)'라는 제목을 붙였다.
42㎝, 48㎝ 높이의 두 점의 분청사기엔 손바닥 자욱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찍혔다. 그가 두 손을 활짝 펴고 흙에 대고 반갑게 인사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다. 가마 속에서 쇠도 녹여버릴 열기를 견디고 단단하게 서 있는 작품들 앞에서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고맙다. 다시 움직여주는 몸이 고맙고, 흙과 불이 고맙다. 모든 게 고맙고 기쁘다."
독창적인 분청(粉靑) 기법으로 도예 작업을 해온 윤광조(76)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가나아트 한남에서 3일 개막했다. 전시작품은 13점엔 신작 '환희'를 비롯해 기존 대표 연작 '혼돈(混沌)'과 '산동(山動)' 등이 고루 포함돼 있다. 신기하게도 그 작품들에 우리 산하가 비친다. 그 안엔 하늘을 향해 꿈틀꿈틀 일어서는 듯한 산이 있고, 천년을 견딘 듯한 바위도 있다. 그 바위에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단단히 새긴 『반야심경』글자도 보인다.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도, 무심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된 작품에 그가 보고, 겪고, 배운 자연이 오롯이 담겼다.
그는 1973년 홍익대학교 공예학부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분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73년 제7회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76년 김광균(1914~1993)의 권유로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첫 개인전 발문을 써준 이가 최순우(1916~1983)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유엔총회 연설을 마치고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을 찾았을 때, 그의 도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봤다. 현재 그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영국박물관, 호주빅토리아국립미술관, 벨기에 마리몽로얄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0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윤광조, 혼돈(混沌), 2013, 적점토, 화장토, 흘리기, 뿌리기, 44cm. [사진 가나아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0/a09db4a3-6d78-4c1a-8ef4-f3c8797f54d2.jpg)
윤광조, 혼돈(混沌), 2013, 적점토, 화장토, 흘리기, 뿌리기, 44cm. [사진 가나아트]
![윤광조, 산동(山動), 2017,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종이붙이기, 58cm.[사진 가나아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10/d9017381-958b-41b7-88f8-3aa0560788f2.jpg)
윤광조, 산동(山動), 2017,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종이붙이기, 58cm.[사진 가나아트]
분청 작업을 일찍 시작했다.
"대학 2학년 때 외국 서적을 취급하던 책방에서 일본 책에 담긴 분청을 보았다. 당시만 해도 매끈해 보이는 도자기가 인기였는데, 투박해 보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자연스러운 멋에 놀랐다. 운이 좋게도 군 생활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하며 혜곡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며 분청사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
분청은 어떻게 다른가.
"분청사기는 적점토로 몸체를 만들고 하얀 화장토를 입힌다. 그런 다음 음각, 양각 등으로 그림과 글씨를 그리고 새기는데 화장토의 농담(濃淡), 붓의 종류에 따라 표현이 다양해진다. 화장토를 바르거나 흘러내리게 하고, 대나무 칼로 글씨를 새기고, 지푸라기로 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분청이 언젠가 다시 인정받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나 보다.
"확신 때문이 아니라 좋아서 한 거다. 나는 누구 눈치를 보며 작업하지 않았다. 싫으면 관두더라도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걸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까 불안정한 생계, 전업작가의 불안과 고통도 견딘 거다."
1980년대부턴 물레질 대신에 손으로 흙을 직접 주무르며 빚었다고.
"보통 도자기는 물레를 돌려 둥근 형태로 빚는다. 맨날 동그랗게만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가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둥글지 않은 형태는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다. 물레를 돌려서 모양을 잡은 뒤 찌그러트리며 변형을 가한 게 그 시작이었다.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다."
'혼돈', '산동', '심경'이란 주제가 보인다.
"우리 문화가 외래문화에 잠식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시작한 게 '혼돈'(2000년대)이었고, '산동'(2010년대)은 경주 작업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도덕산이 마치 살아서 다가오는 듯한 전율을 느껴 시작했다. 산이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끝없이 변하고 움직인다는 깨달음을 담았다. '혼돈'도 처음엔 그런 세상의 변화가 못마땅했지만, 나중엔 새로운 질서가 잡히기 전의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더라. "
신작은 '환희'다.
"어깨 통증으로 2년 6개월 동안 작업을 못 했다. 조수 없이 작업의 모든 과정을 혼자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도 있다. 곁에 사람들 두고 작품을 양산하는 건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작품은 한 인간의 순수와 열정, 땀으로 만들어지는 건, 물건을 양산해 납품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업자'다."
작업을 재개하고 달라진 것은.
"크기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변화가 왔다(웃음). 그걸 이젠 받아들이려 한다. 억지로 만들고 세상을 놀라게 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설수록 남의 것을 자꾸 기웃거리고 베끼며 망가진다. 변화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전업작가로 50년을 일해왔다.
"나는 일 년에 작품 몇 개 만들지 못한다. 큰 작품은 형태를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리고, 석 달을 말린다. 이러니 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게 문제였다. 그런 불안정한 시간을 견뎌내려면 무엇보다 멘탈이 가벼워야 한다. 뭐든 미련 갖지 말고,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작품은 '외향형'의 그를 닮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잘하는 "함경도 아바이" 기질로 28년째 산속에서 작업하지만, 틈틈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캠핑카를 몰고 여행 다니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는 "얽매이는 게 싫어 평생 조직생활을 안 했는데 지금 동네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며 "산속에 살아도 캠핑은 내가 세상에 나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만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