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정신 헌법 전문에 싣고, 노태우 비자금도 끝까지 환수해야"

5·18민주화운동 45주년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광주광역시 서구 재단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광주광역시 서구 재단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5·18민주화운동은 단지 광주와 광주시민들만의 항쟁이 아닙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모든 시민의 굳은 의지와 노력이 ‘5·18’이란 단어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묻자 5·18민주화운동이 ‘광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 유린과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이 이후에도 45년간 전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다. 원 이사장은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나왔고, 그 목소리가 모여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이사장도 1980년 당시 상황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전남대 농대 학생회장으로 5·18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구속됐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맡으며 평생을 5·18민주화운동의 계승·발전에 헌신해 왔다. 지난 13일 광주광역시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45주년을 맞이한 5·18민주화운동의 시대적 의미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45년이 지났다. 
“벌써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각에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오해나 왜곡·폄하가 끊이지 않고 있다. 198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특히 어떤 주장이 진실과 다른가. 
“아직도 일부 단체에서 ‘광주 사태’나 ‘폭동’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이 ‘폭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비폭력적 항거였다는 사실은 이미 역대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나. 이는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다.”
 
원 이사장은 “1980년 광주에서의 시민들 저항이 초석이 되면서 이후 서울은 물론 대구와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진실 규명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게 됐다”며 “그 목소리들이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 차원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은 교육과 연구, 문화 교류 등이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교육 과정에 포함하도록 제안하고 교사들 연수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연구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45년이 지났지만 아직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통사(通史)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개인 평전이나 야사는 많지만 정사가 없는 셈이다. 이를 위해 재단도 올해 7억원을 들여 통사 제작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다. 역대 정부에서 수차례 언급했고 필요성도 인정해 왔지만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말처럼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할 정도로 별 이견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헌법 전문을 수정하려면 개헌이 필요한 탓에 아직까지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헌법 전문 수록이 시급한 이유는.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기본 정신을 담고 있지 않나.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했음에도 헌법 전문은 3·1 운동에서 시작해 4·19혁명에서 끊긴 상황이다. 이런 역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니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는 것 아니겠나. 헌법 전문에 5·18 정신뿐 아니라 1979년 부마 항쟁과 1987년 6월 항쟁 등이 함께 수록되면 이 같은 역사의 왜곡도 사라질 수 있지 않겠나.”
 

지난해 10월엔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를 비자금 은닉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특별사면은 받았지만 이들이 은닉한 비자금은 온전히 환수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재단에도 이들 일가가 비자금을 세탁해 해외로 빼돌렸다는 등의 여러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 정도면 수사기관도 모를 리가 없지 않나. 노소영씨 스스로도 300억원이 노태우 비자금이라고 밝히지 않았나. 관건은 과연 검찰이 철저히 수사할 의지를 갖고 있느냐다.”
 

노태우 비자금 환수가 중요한 이유는. 
“부정하게 축적한 비자금은 끝까지 환수한다는 선례를 남겨야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유공자 중 일부는 여전히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필요하면 공소시효를 없애는 특별법도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렇게 환수한 자금으로 국가에 기여한 분들의 복지를 좀 더 살핀다면 우리 사회도 한층 성숙한 공동체가 되지 않겠나.”
 

5·18 정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5·18기념재단이 정의한 5·18 정신은 ‘민주·인권·평화’ 등이다. 여기에 저는 ‘나눔과 자치’ ‘희생과 봉사’를 더하고 싶다. 당시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다친 사람들을 함께 도우며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는 점에서다. 고무적인 건 최근 들어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내겠다’는 시민 의식이 한층 강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5·18 정신이 세대를 초월해 21세기 한국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