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률 19%, 식량주권 위기…땅 좁은 한국에 딱 맞는 이 농업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오를수록 한국은 유독 더 힘들어진다.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지만,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면서 ‘식량 안보’에는 경고등이 들어온 지 오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도의 밀 수출 중단은 세계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를 자극하며 ‘먹거리의 무기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제부턴 한국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동시에 해외의 식량 공급망을 깔아 ‘농업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0년 30.9%에서 2020년 19.3%(유엔 식량농업기구 집계 기준)로 20년간 10%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그동안 정부는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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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률이 92.8%인 쌀을 제외하고는 주요 식량 작물 대부분이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밀 자급률은 0.8%, 콩은 30.4%에 그치는 수준이다.

심화하는 기후 위기로 먹거리 문제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곡물 가격 폭등이 국내 경제에 거의 10년 주기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당장의 위험이 지나가면 관심에서도 멀어졌다”며 "농촌 표(票)를 의식한 보여주기 정책만 있었을 뿐, 미리 자급률을 높이고 공급망을 다져놓는 등 위기를 대비한 노력은 없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기후 위기에 세계 곡물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하는 때부터 한국이 먹거리 재앙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우선 ‘식량주권 확보’를 목표로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밀·콩 등 자급률이 낮은 곡물을 대상으로 전문 생산단지 등 자급 기반을 확충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가 여태껏 자급률 목표 달성에 실패해 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곡물자급률을 21.8%에서 2022년 27.3%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실적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한국의 국토 면적은 작고, 농사짓는 땅은 매년 줄어드는데 농촌 인구 역시 고령화로 점점 쪼그라드는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전문가는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해외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현재 농업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안양대 교수)은 “국내 농업은 사료용 작물보다는 식용 작물을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농업개발과 자체 유통망 확보로 안정적인 수입 체계를 갖춘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장기적으로 가격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공급선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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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안정적인 해외 식량 공급망 확보를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206개의 기업이 해외농업개발 계획을 신고했고 이 중 75개사가 현지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2010년 10만8000t에 불과했던 해외농업개발 기업의 작물 생산·유통량은 2021년에 215만5000t으로 약 20배 증가했다. 특히 국내로 반입하는 해외 생산 작물의 양은 2010년 424t에서 2021년 63만3975t으로 1500배 가까이 폭증했다.

특히 2018년 롯데상사(러시아), 2019년 포스코인터내셔널(우크라이나), 2020년 팬오션(미국) 등으로 진출을 확대하면서 국내 반입량이 늘었다. 러시아 농장 현지에서 법인장을 지낸 최원보 롯데상사 팀장은 “러시아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인 데다 비(非) 유전자 변형 생물(non-GMO)만 재배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고급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중국 등 인접국으로 수출도 할 수 있어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러시아에 진출한 중견기업 팜스토리 관계자도 “진출 초기에는 땅을 비옥하게 조성하고 현지 인력을 수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10년 이상의 경험으로 현재는 생산성과 수익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정부는 향후 무역상사 등의 해외농업개발 진출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작성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곡물 엘리베이터(현지 수출 관련 설비) 지분 인수 등 민간의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에 자금 지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 기업의 사전 조사와 품종·농기계 등 실증 지원도 계속 추진한다.

곡물자급률 제고, 공급망 확보 노력과 별도로 당장 치솟은 밥상물가를 안정화하는 것 역시 정부의 당면 과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밀가루 가격 안정, 경유 가격 부담 완화 등을 포함한 물가 및 민생 안정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과제 발굴에 모두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밀가루 업체의 가격 상승분 70%를 국고로 지원하는 예산 등 물가 안정 사업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