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의 아조브스탈 제철소 인근에서 모습을 보인 친러시아군대 호송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모처에 숨어 수류탄 상자를 침대 삼아 쪽잠을 자고 현지인들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 죄책감에 시달린 끝에 이 러시아 장교 A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 더러웠고 피곤했다. 주변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그 일부였다”면서다. CNN은 22일(현지시간) A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사직까지 과정을 소개했다. 신변 보호를 위해 A의 이름과 개인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휴대전화 제출…Z 작업 후 크림반도로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의 아조프스탈 제철소 인근을 지나는 친러시아군.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부대가 크림반도에 도착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다. 그러나 A와 군인들은 이에 관한 소식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진입을 명령받은 건 이틀 후였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진입을) 거부하면서 사직서를 쓰고 떠났다”며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 그냥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우크라이나로) 갔다”고 말했다. 여전히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탈나치화’ 같은 주장들조차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린 대부분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죽지 않은 건 기적…살려고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날 공격의 수위가 심해졌다. 이들을 겨냥한 박격포 공격도 있었다. A는 “우리 중 누구도 죽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며 “첫 일주일 동안은 멍한 상태였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면서는 이런 생각을 했죠. ‘오늘은 3월 1일이다. 내일 나는 일어날 것이고, 3월 2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또 다른 날을 사는 것이다’.” 어느 날엔 전투 보너스 지급 소식에 “여기서 15일만 더 버티면 대출 다 갚겠다”면서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라디오 뉴스 듣고 “죄책감”

지난달 6일 수습된 우크라이나 부차 대학살 피해자 시신. EPA=연합뉴스
그는 결국 용기를 내 사령관을 찾아가 사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사령관은 “불가능하다”며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A는 “사령관은 ‘형사 재판이 있을 수 있다. 사직은 배신’이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며 “사령관이 종이와 펜을 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돌아왔다. 그는 “정치는 모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집에 돌아올 수 있어 기쁩니다.”
한편 러시아 군인의 무단결근은 징역형이 가능한 형사 범죄다. 발렌티나 멜니코바 러시아군인어머니회 사무총장은 CNN에 “수많은 장교와 군인이 사직서를 쓰고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용병들은 계약 10일 이내에 동기를 밝히고 사임할 수 있다. 인권운동가 알렉세이 타발로프는 “(사직한 군인의) 수는 1000건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모집 중인 용병은 대부분 가난한 지역 출신이라고 그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