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 배경은 그의 동생이 실종된 장소인 소연평도 인근 해역. 그래픽=박경민 기자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의 설명과 제가 사고 현장에서 수색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의 참사 경위는 이렇습니다. 2020년 9월 21일 새벽 12시 50분쯤 어업지도선 조타실에서 나감, 당일 오전 11시쯤 배에서 사라진 것 확인, 소연평도 해역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 23일 오후 3시 35분쯤 북한 해안 경비정에 의해 체포, 약 6시간 뒤 북한 해역에서 피살. 간략한 타임라인만 봐도 30시간가량의 해상 표류 시간이 있었습니다. 체포 뒤 죽음까지 6시간의 ‘골든 타임’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피살된 전 해수부 공무원 이모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4/c548ad18-d2aa-4cbe-b0d0-303dbed3b30d.jpg)
북한에서 피살된 전 해수부 공무원 이모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 [연합뉴스]
근거 없는 월북 주장은 인권침해
오히려 동생이 북한 해역에서 무참히 살해된 뒤 해경과 군 당국은 "실족, 극단적 선택, 자진 월북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모두 명확한 근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극단적 선택이나 자진 월북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21년 7월 이러한 해경과 군 당국 발표에 대해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이라는 결정문을 냈다는 겁니다. 사건 발생 당시에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우리 정부가 "북한군이 총격 후 화형으로 동생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섣부른 추측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국민이 생명을 부당하게 빼앗긴 상황에서 왜 해경과 군 당국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표를 했을까요.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정감사 등에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2차장으로부터 동생이 북한에 체포돼 바닷물 속에 몸이 있는 상태로 7∼8㎞를 끌려가는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북한 해역이라 구조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끌려가는 도중에 숨졌든, 북한군 총격 때문에 숨졌든 뻔히 상황을 알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우리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 정권 마지막 날 법원 자료도 회수
![북한에 피살된 전 해부수 공무원의 유가족이 지난해 10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4/dcbd57c5-ee6d-48ac-be6e-fa1ccb0a5d80.jpg)
북한에 피살된 전 해부수 공무원의 유가족이 지난해 10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뉴스1]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7월 25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패소하면 "항소를 자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고 정보공개청구 소송 일부 패소에 항소로 대응했습니다. 심지어 문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엔 동생 죽음과 관련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부랴부랴 수거하고 봉인해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넣어버렸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그 안에 꼭 감추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 전 대통령 등 직무유기 고발 준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된 정보라고 해도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으면 열람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처를 다 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두 조카 중 초등학생인 둘째는 최근에야 아빠의 죽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한풀이로 비치진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국민이 유사한 일을 당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동생이 북한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지한 뒤에도 왜 북한에 송환 요청을 안 했는지, 그 결정에 누가 관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이 문재인 정부가 봉인한 대통령기록물 안에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대통령기록물이 진실 은폐 수단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1월에 북한에서 피살된 전 해수부 공무원의 아들을 만나 위로하는 모습. 오른쪽은 그 아들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기록. [유족 제공]](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5/24/dc2aa8e4-b28f-4c1b-b543-53678bb14d25.jpg)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1월에 북한에서 피살된 전 해수부 공무원의 아들을 만나 위로하는 모습. 오른쪽은 그 아들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기록. [유족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 후보자 신분일 때 저와 두 차례 만났습니다. 당시 정부의 행적을 담은 문서가 공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적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봉인된 기록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법이 열람을 허용할 때 하루라도 빨리 집행되도록 해주십사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만약 전 정부 관계자들을 고발하면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가 이뤄지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와 제 동생 가족 모두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