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기자의 촉: '남탕 내각'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승희 전 의원을 지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오유경 서울대 약학대학장을 내정했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의 여성 장관이 5명(28%)으로 늘었다.
당선인 시절 1차 조각 때의 17%(3명)보다 올라 환영할 만하지만 여전히 낮다. 차관급 42명 중 39명, 대통령실 실장·수석·비서관 46명 중 43명이 남성이다. '남탕 내각' '서오남 인사' '서육남'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교육부 장관은 놀랄 정도다. 종전 59명의 장관 중 3명만 여성이다. 복지부 장관은 59명 중 7명이다. 식약처장은 17명 중 3명이다. 교육부 장관은 1979년(김옥길)에, 복지부는 1982년(김정례)에 첫 여성 장관이 나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30여년 만이다.
미국의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보기에 이런 상황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WP의 성 민 김 백악관 출입기자는 정상회담 주제와 다소 벗어난 듯한 한국의 성 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돌발 질문'이었다.
WP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경제협력 증진 관련 질문을 먼저 던졌다. 바이든의 답변이 끝나자 진행자가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겠다"고 하자 WP 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내각은 대부분 남자만 있습니다. 한국은 선진국 중 여성의 진출이 매우 낮은 편인데요. 대선 기간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여성의 대표성을 증진하기 위해, 성 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윤 대통령은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면 내각의 장관이라면, 그러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이게 우리가 각 직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보장하겠다"라고 답변했다.
WP 기자는 기자회견 후 '한국 대통령, 성 평등 질문을 받았을 때 불편해 보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질문을 받고선) 멈칫거렸다. 수초간 미동하지 않고 서 있었고, 이어폰(동시통역용)을 귀에서 빼고 답변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그리고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쳤다"고 덧붙였다.
WP 기자는 "그 상황은 윤 대통령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임금·정계 진출·경제활동 등의 분야에서 성평등이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3.9 대선에서 승리한 후 국내 언론은 성과 지역 안배를 누누이 권고했다. 신문·방송할 것 없이, 보수·진보 매체 구분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능력만 보겠다"며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WP 기자의 지적에, "여성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라는 한 참모의 직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듯' 하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 여론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21일 WP 기자의 질문에 얼굴이 굳어졌고 그 결과가 26일 3명의 여성 지명으로 나타났다. 하도 갑작스러운 발탁이라서 제대로 검증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만약 WP 기자가 없었더라면,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호영 복지장관 후보자의 낙마 파동이 없었더라면 17%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세계 시민 여러분, 저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유를 강조했다. 보편적 가치에는 평등도 있다.
핀란드 장관 19명 중 12명이 여성이다. 30대 장관만 넷이다. 스웨덴도 23명 장관 중 12명이 여성이다. 바이든 행정부 15명 장관에는 다양성과 감동이 넘친다. 최초의 원주민 출신 장관, 쿠바·푸에르토리코·멕시코 등지의 이민자 후손, 여성 5명, 흑인 2명 등이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임명해야 할 공직이 아직 무수히 많다. 널리 인재를 구하려고 노력한다면 성·지역 안배에다 감동 포인트까지 담은 인사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정=윤 대통령에게 질문한 WP기자를 미셸 리에서 성 민 김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