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석의 면면면 ⑩ 된장 막국수

더운 날씨게 입맛이 없을 때 챙겨 먹는 별식, 된장 막국수. 사진 이유석
이 국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려면, 먼저 내 지인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메밀이 생경했던 나를 끌고 갖은 유명하다는 곳은 빼놓지 않고 탐방시켜, 면의 세계에 ‘입덕’하게 만든 바로 그 지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결국 나를 메밀면을 매일 만들어 파는 국수집 셰프로 만들어줬다.
대략 십 년 전의 어느 날, 그 지인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처음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데다, 그가 워낙 알려진 미식가이기도 한 탓에 엄청난 요리들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즐거운 담소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기대하던 식사시간이 됐다. 그런데 지인이 작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는 게 아닌가. ‘설마, 인스턴트라면은 아니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맛의 궁합이 있는데, 한번 재미 삼아 만들어 먹어 보자.” 궁합이 궁금하다고 한 그 음식은 즉석에서 쓱쓱 배합한 된장 소스를 메밀면에 비벼낸 국수였다. 순간, 나는 다소 실망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이 조합이 무척 궁금하다고 큰 호응을 해주었다. 만드는 과정도 무척 간단했다. 면을 삶아내 찬물에 헹구고 된장 소스와 들기름, 참기름을 뿌려 건성건성 비비는 게 전부였다. 정말이지 더욱,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머릿속이 쨍하고 울릴 정도로 맛있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흡입하고 나서 빈 그릇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집 대문을 나서며, 무언가에 홀린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뻔하고 단순한 조합의 음식이 그렇게나 맛있었던 건, 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익숙한 재료들의 조합이 의외로 신선했던 걸까? 결국, 다음날 재료들을 직접 사서 집에서 혼자 만들어보고 난 후에야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답은 바로 후자였다.

된장과 멸치액젓, 식초 등 익숙한 재료로 만든 소스는 의외의 신선한 맛을 자랑한다. 중앙일보
그런데, 메밀과 된장의 조합을 글로 표현하려면, 대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다소 낯선 것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잘 어우러지는 그런 맛인데, 사실 먹어봐야 아는 맛이기도 하다. 한 젓가락 입에 물고 천천히 음미하며 씹으면 진가를 알 수 있다. 생소한 듯 친근한 이 국수는 어쩐지 강원도 산골 계곡에서 해 먹으면 좋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한쪽은 업고, 한쪽은 업힌 채 안개 자욱한 개울가를 함께 건너는 왼손잡이 두 주인공 ‘허생원과 동이’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국수의 이름을, 이번 칼럼을 빌어 ‘된장 막국수’라 명명해본다.
Today‘s Recipe 이유석의 된장 막국수
“된장 막국수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팁이 있다. 먼저 된장과 멸치액젓, 설탕, 표고버섯을 수분을 날아갈 정도로 살짝 볶아내는 것이다. 사실 생략해도 되는 과정이지만 이렇게 하면 맛이 훨씬 깊고 구수해진다. 또한 참기름을 넣을 때 들기름을 함께 넣으면 풍미가 좋아진다.”
재료 준비

된장 막국수의 재료. 참기름과 들기름을 함께 넣으면 풍미가 더 좋다. 사진 이유석
만드는 법
1. 된장·멸치액젓·진간장·설탕과 다진 표고버섯을 모두 섞어서 두꺼운 냄비에 넣고 약불에서 2분 정도 볶는다.
2. 준비된 1에 식초와 참기름을 넣는다.
3. 굵은 소금을 살짝 넣어 팔팔 끓인 물에 건 면을 넣고 2분 정도 삶은 뒤 건져내 찬물로 헹구고 물기를 뺀다.
4. 3의 면을 그릇에 담고, 2의 양념을 위에 올린 뒤, 열무김치와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이때, 열무김치 국물을 두 큰술가량 면 위에 뿌려주면 맛이 더 시원해지고, 면도 더 잘 비벼진다.
이유석 셰프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