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 뉴스1
한ㆍ미 정상회담 효과는 채 한 달도 가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나 “외환시장 협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내면서 들끓던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았던 것도 잠시였다. 다시 찾아온 미국발 물가 쇼크에 외환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돈으로 내몬 ‘신호탄’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통계국이 공개한 소비자물가지수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8.6%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 8.5%, 4월 8.3%였던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통계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등 긴축 고삐를 더 강하게 죌 것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4번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한ㆍ미 기준금리 역전은 불가피해 보이며, Fed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역전 폭은 상당히 커질 수 있다”며 “이런 우려로 원화가치가 하락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같은 이유로 채권시장도 비상이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239%포인트 상승(채권값은 하락)한 연 3.514%로 거래를 마쳤다. 2012년 4월 이후 10년여 만에 3.5% 선을 뛰어넘었다.
문제는 최악이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고물가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언제가 정점일지 여전히 안갯속이다. 동시에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보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달 미국 시카코대 부스비즈니스스쿨과 공동으로 미국 경제학자 49명 대상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 70%가 내년 또는 이전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겠다고 예상했다. 38%는 내년 상반기를 침체 시기로 지목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체력(펀더멘탈)은 예전 같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다. 경제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에서 이상 신호가 뚜렷하다. 재정수지와 무역수지(또는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올해 나타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날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일까지 누적 무역 적자만 138억2200만 달러(약 17조8000억원)에 이른다. 국제 원자재가 상승 여파로 수입액이 가파르게 늘면서 적자가 불고 있다. 지난달 30일 산업연구원은 올해 연간 무역수지를 158억 달러 적자로 예상하기도 했다. 기재부 전망에 따르면 올해 재정수지는 적자 ‘예약’이다.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연말 110조8000억원에 이를 예정이다.
물가는 물론 수출, 재정, 성장 등 여러 경제지표가 2008년 금융위기 또는 1998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을 곧 맞닥뜨릴 수 있다는 쪽을 가리키고 있다.

13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연합뉴스
뾰족한 해결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물가 서프라이즈는 통화정책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유가 상승에서 대부분 기인한 것”(윤소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정부 대응도 단기 대책 위주다. 방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미국 FOMC 결과에 맞춰 16일 금융위원회ㆍ한은ㆍ금융감독원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국채시장에 대해선 한은과 정책 공조를 강화해 이번 주 예정돼 있던 바이백(정부가 금리를 안정시키려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조치) 규모를 확대하고 대상 종목도 추가할 예정”이라며 “시장 내 과민 반응 등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