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금리 급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위기다. 연합뉴스
명품들은 코로나 기간 수차례 큰 폭으로 가격을 올렸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 해외 명품 기업들은 큰돈을 벌었다. 샤넬만 해도 지난해 국내에서 네 차례, 올해도 1월과 3월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최근에도 6~7월 인상설이 돌며 주요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다시 줄 서기가 시작됐다.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명품 열풍은 계속되는 걸까.

샤넬 루이비통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이라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매년 수차례 가격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연합뉴스

샤넬 클래식 플랩백(미디엄) 가격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진짜 부자’들 사이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매달 한국을 포함한 23개 주요국 소비자들을 설문조사해 소비자 동향을 분석하는데, 최근 몇 개월간 부유층과 중산층의 인식이 비슷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말 현재 ‘생활 물가가 계속 오르는 것이 걱정된다’는 중간소득자가 77%인데 같은 걱정을 하는 고소득자도 74%나 됐다.
‘3년 안에 재정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중간소득자는 46%에 불과했는데 고소득자도 이 비율은 54%정도였다. ‘6개월 안에 새 차를 살 계획’이라는 답도 중간소득자(28%)와 고소득자(31%) 간 큰 차이가 없었다.
〈세계 소비자들의 항목별 물가 인상 인식〉

※ 직전 달보다 물가가 올랐다고 인식하는 세계 23개국(한국포함) 2만3034명 소비자 평균. 자료 : 딜로이트
명품은 품질뿐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동경·충성·신뢰 등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 탓에 어쩔 수 없이 올렸다’는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호황을 누리고 역대급 실적을 올린 명품 기업들이 다시 ‘인플레이션 탓에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자세를 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소비자 비율(파란막대)〉

※ 2022년 5월말 조사 기준. 자료 : 딜로이트
굳이 지출을 줄일 필요없는 부유층도 원칙없고 불투명한 가격인상이나 소홀해진 고객 관리 등으로 신뢰를 잃은 브랜드 대신 다른 명품 브랜드로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다. 더불어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시기엔 명품 대신 금이나 부동산 같은 안전자산 투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밤을 새워서라도 명품을 원했던 소비자들과 몸값을 올리며 희소가치를 더해가던 명품들. 어쩌면 전염병 이후 맞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의 시기가 이 기울어진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