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현지시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든 채 운구 행렬을 이끌고 있다. EPA=연합뉴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무라토프가 1993년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할 당시 자금을 지원했다. 이 신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 지난 3월 러시아 당국의 탄압으로 폐간했다.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한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며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했다.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길 메시지는 '평화'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라토프가 3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을 이끌고 있다.AP=연합뉴스
시민 수천 명 추모 행렬..."정부 향한 슬픈 항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추모하기 위해 3일 러시아 시민들이 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길게 줄을 섰으며, 많은 이들이 고인의 관 앞에 헌화 후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고 NYT는 전했다.
고르바초프를 추모한 한 32세 청년은 "모스크바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세 청년은 "그는 우리에게 햇빛(평화)을 주었는데, 이제 어둠만 있다"고 슬퍼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고르바초프 장례식에서의 이같은 추모 열기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평화롭고 슬픈 항의"라고 평했다.

3일 거행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 AFP=연합뉴스
國葬 안하고, 푸틴 불참
NYT는 2007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서거 당시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푸틴 대통령이 국가 애도일을 선포한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BBC는 "국장이 아닌 점은 현 러시아 지도부가 고르바초프의 유산을 기리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3일 그의 장례식엔 참석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이번 장례식에 참석한 외국 지도자는 친러시아 인사로 꼽히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거의 유일했다. NYT는 이를 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잔혹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의 처지를 보여준 일"이라고 평했다. 러시아 측 인사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세르게이 스테파신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고르바초프는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인한 투병 끝에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그는 1999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