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올초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열린 대기업 물적분할 반대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앞으로 상장 기업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는 ‘기업 쪼개기’ 이전 주가로 주식을 팔고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기업이 쪼갠 자회사를 상장할 때 일반 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이 미흡하면 상장이 막힌다. 또 물적분할 관련 기업 공시는 한층 강화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 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4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자본시장 혁신과 투자자 신뢰 제고로 모험자본 활성화’ 후속 대책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기업 쪼개기 상장에 나선 경우 모회사의 기업가치(PBR)는 상장 후 약 30%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LG화학이 지난해 9월 핵심 사업인 배터리 사업을 분사(LG에너지솔루션)하고, 상장에 나서기로 결정한 순간 LG화학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LG화학 기존 주주들은 ‘앙꼬 없는 찐빵’에 투자한 꼴이 됐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신주인수권은 보류
만일 협의가 되지 않으면 자본법령상 시장가격(이사회 결의일 전날부터 과거 2개월, 과거 1개월, 과거 1주일간 각각 가중평균한 가격을 산술 평균)을 적용한다. 이조차도 어긋나면 법원에 매수가격 결정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은 대책서 제외됐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신주 우선 배정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의견을 고려해 중ㆍ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느 시점의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를 배정할지 등 제도의 기준이나 효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분할 후 상장 시...일반주주 보호 노력도 심사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 심사 문턱은 높아진다. 물적분할 이후 5년 내 자회사를 상장하려는 경우, 거래소가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을 심사하고, 미흡한 경우 상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미 물적분할을 끝낸 기업도 분할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이번에 강화된 상장심사를 받는다.
금융위 측은 “심사 시 형식적인 주주 소통만으로는 주주 보호 노력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업의 실질적 노력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정부의 대책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 전문 변호사인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쪼개기 상장에 따른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는 대책이 나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그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을 시장가격 대신 공정가액 등 유연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각 가격을 시가로 고정하면 자칫 기업이 주가를 끌어내리는 등 유리한 시점을 택해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물적분할 제도는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이라는 순기능이 있다”며 “모든 물적분할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도입하기보다는 폐해가 생겼던 핵심 부문을 물적분할하는 경우로 한정하는 등 제도의 순기능을 살릴 방법도 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