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뉴시스.
직원 개인카드로 2억 결제
대사관 측은 "결제 후 해당 직원의 계좌에 쓴 만큼의 비용을 입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카드 결제 후 현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청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도 비서실 직원의 개인 카드로 식비 등을 결제한 뒤 추후 경기도 법인카드로 바꿔치기 결제를 하는 수법을 썼는데 이로써 예산의 사적 사용을 은폐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외교부는 주재국 사정으로 대사관 명의 카드를 발급받지 못할 경우 개인의 신용카드를 행정지원시스템에 등록하고 업무상 용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A대사관은 이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다.

2022년 외교부의 재외공관 정기감사 결과. A대사관은 행정 직원의 개인 카드로 대사관 운영비 명목의 결제를 한 뒤 추후 현금을 송금해 보전했다. 감사관실은 규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관련 조치를 주문했다. 자료 외교부. 태영호 의원실.
대사 부임 전 점심값을 청구?
이번 감사에선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를 쓰고도 집행 내역과 결과를 남기지 않은 사례(한화 약 6599만원), 제때 회계 처리를 하지 않은 사례(한화 약 1061만원) 등이 다수 적발됐다. 규정에 따르면 공관장(대사, 총영사) 외 공관원이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의 최소 30%는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공관장이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의 약 90%를 독점하고 쓴 경우도 있었다.
외교부 감사관실은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는 외교 정보 수집 등 외교 목적성과 대외 보안성이 있는 업무에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교민 접촉, 홍보 배너 제작, 케이터링 등 부적절하게 쓴 사례도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출장 기간을 허위로 보고해 돈을 타가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 12월 C공관에서는 현지에서 열린 무상원조사업 행사 참석을 위해 공관원 세 명이 당일 출장을 간 뒤 보고서엔 1박 2일 출장이라고 쓰고 일비와 식비 약 77만원을 타갔다.

사진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 캡처.
구입했다는 선물은 '실종'
D공관에선 자개보석함, 머그잔, 부채세트 등을 샀다고 행정지원시스템에 올렸지만 선물을 준 것도 아닌데 정작 재고는 하나도 없었다. 해외 공관에선 선물용으로 주류를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도 공관이 구입했다고 보고한 와인 병수와 실제 보유한 병수에 차이가 났다. 시스템상으로는 52병을 샀다고 돼 있는데 실제론 39병밖에 없어 13병이 비는 식이다.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연말에 고가의 선물을 과다하게 구입한 정황도 있었다. E공관에서는 2019년 12월 금관, 거북선 등 선물 약 254만원어치를 산 뒤 3년째 활용하지 않아 감사관실로부터 "예산 낭비가 없도록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태영호 의원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해외 공관일수록 예산 집행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간 반복되어온 외교부의 비상식적인 관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국민 혈세가 부당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재외공관 살림살이를 보다 철저히 관리해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2년 외교부의 재외공관 정기감사 결과. 행정지원시스템상 주류보유현황과 실보유분 간 차이가 난다. 자료 외교부. 태영호 의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