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화마에 아들 잃은 아버지, 소주만 들이켰다

대전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이튿날인 27일 오전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하 주차장에 건물 골조 등 잔해물이 드러나 있다. 연합뉴스

대전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이튿날인 27일 오전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하 주차장에 건물 골조 등 잔해물이 드러나 있다. 연합뉴스

“오래 일할 생각은 아니라고 했는데…”
대전 유성구 현대아울렛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된 A씨(33) 작은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착한 애였어요. 놀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일하러) 다닌 거였는데… 전날에만 그만뒀어도 살았을 거예요. 원통한 생각이 들어요.” A씨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족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빈소가 차려진 26일부터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A씨 아버지는 27일 이른 아침부터 빈소에 앉아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A씨 빈소 앞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보낸 화환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A씨 유족은 전날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현대백화점 관계자에게 “우리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꿈에서 깨라는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날 빈소를 찾은 A씨 친척은 영정을 바라보지 못한 채 통곡했다.

"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네요." 

현대아울렛 방재실에서 시설팀으로 근무하며 소방시설을 관리하던 B씨(33)의 동생은 침묵 끝에 이렇게 말했다. B씨 빈소가 마련된 충남대병원 장례식장은 고요했다. B씨의 아버지는 빈소 한쪽에서 지인과 마주 앉아 소주를 연신 들이켰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가 죄인이지… 아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는 B씨는 야간근무를 한 뒤 오전 9시 퇴근을 앞두고 있다가 화마(火魔)에 휩쓸렸다.

B씨의 가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고등학교 때까지 높이뛰기 선수를 했다고 한다. 군 전역 후 통신기기 판매 관련 일을 하다 지난해 전기관련 자격증을 취득, 최근 대전 현대아울렛 시설관리를 맡은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새 회사로 옮긴지는 5개월째라고 했다. 차 안에서 발견된 B씨는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시커먼 그을음이 묻은 상태였다.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탑승했던 차량은 기둥 쪽에 부딪혀 일부 파손된 상태였다. 한 지인은 “사고 당시 벨이 울리니까 (B씨가)119에 신고를 하고 출퇴근용 자동차를 꺼내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하주차장에 가득 찬 연기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B씨의 친척은 “뭐든 시작하면 열심히 하고, 성격도 쾌활한 조카였다”며 “엄마가 안 계셔서 아버지가 조카를 각별히 아꼈다”고 말했다. 그는 “조카가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싶어서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해서 자격증도 따고, 회사에도 합격했다”며 “지난 추석 명절 당일에도 야근이 잡혀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그렇게 큰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질식으로 숨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수사당국이 화재 원인과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밝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화재 사망자 시신은 대전선병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대전병원 등에 안치됐다. 몇몇 사망자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전날 A씨와 같은 병원으로 옮겨진 C씨(65)는 시신이 심하게 훼손됐다. 이 때문에 신원 확인이 늦어져 아직 빈소를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전날 소방당국은 브리핑에서 "모든 출구에서 연기가 발생한 것으로 미뤄 다량의 유독 연기에 (사망자들이)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27일 오전 시신을 부검하는 등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