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믿던 원유수출 말썽…돈줄 막힌 러, 동원령 역풍 먹구름

지난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달러당 루블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달러당 루블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비 조달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서방 제재에도 7개월 넘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뒷받침해 준 러시아 경제가 국내외에서 동시다발 악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예비군 동원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판인데, 원유 수출 실적은 나빠지고 있다. 이에 러시아 군사 재정이 고갈 위기에 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中·인도 수입 줄여…원유 수출 감소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은 예비군 2500만 명 중 30만 명을 징집한다는 내용의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동원 예비군을 훈련하고, 이들에게 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투입할 예산은 빠듯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의 전쟁 비용을 뒷받침해주던 에너지 수출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영국 원유시장 분석업체 오일엑스의 닐 크로스비 수석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산 원유 수출량은 지난달 480만 배럴에서 이달 들어 450만 배럴로 줄었다”며 “러시아 원유를 사주던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터키)가 수입을 줄인 탓”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떨어지는데 루블화는 강세

 지난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달러당 루블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에 달러당 루블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는 하락세로 돌아선 국제유가 때문에도 고민이 깊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기준점)인 브렌트유는 최근 배럴당 85달러 선에서 거래 중이다. 지난 6월 대비 약 30% 하락했다. 서방 제재로 원유 판로가 막힌 러시아는 국제시장에서 시가보다 배럴당 20달러 싸게 원유를 팔고 있다. WSJ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추정한 최소 수지 균형점이 지난해 기준 배럴당 69달러임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손해를 보며 원유를 판매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킹 달러(달러 강세)’ 상황에서 상대적 강세인 루블화 가치도 악재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28일 기준 1달러가 58.86루블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월 130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 가치는 5월 중순부터 60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WSJ는 “(루블화 강세로) 해외 원유 판매 대금을 루블화로 전환하면 실질 수출 가치가 예전보다 낮아지게 됐다”고 전했다.

 

예산 수입 45%가 원유·가스인데…불안심리 확산

이에 따라 올해 7월까지 흑자를 기록하던 러시아 정부 재정은 지난달 3000억 루블(약 7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 재정흑자 규모는 7월 말 481억 루블에서 8월 말 137억 루블로 줄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재정 수입의 약 45%가 석유와 가스 수출에서 나온다. 

스페인 마드리드 경영대학원의 막심 미로노프 교수는 “원유, 가스 수익이 말라붙는 와중에 동원령이란 불확실성이 등장하며 러시아 경제에 또 다른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내부에도 불안 심리가 커졌다. WSJ는 “러시아 경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동원령 발표 직후 러시아 증시가 폭락하는 등 러시아 산업계와 금융투자업계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동원령 역풍에 노동력까지 유출

지난 27일 러시아 세바스토폴에서 동원령으로 징집된 러시아 예비군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27일 러시아 세바스토폴에서 동원령으로 징집된 러시아 예비군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국채 발행, 내년 적자 예산 편성 계획 등으로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WSJ는 “러시아 국채 중 20%를 보유한 해외 투자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거래가 차단된 상황”이라며 “국채를 통한 자금 조달은 결국 러시아 내부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전했다.

 
산업 전망도 어둡다. 러시아 내 노동력 유출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1일 동원령 발표 이후 러시아 국경을 빠져나간 러시아인이 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로노프 교수는 “동원령에 따라 수많은 남성이 러시아 국경 밖으로 탈출했다. 이들은 전투 가능 연령층이자 동시에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라며 “이들이 떠나면 향후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