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22) 천자의 활로 사슴 맞힌 조조, 혈서로 암살 지시한 헌제

여포가 살기 위해 애걸한 반면, 장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조를 죽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조조가 칼을 빼 장료를 죽이려 하자 유비가 조조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관우는 무릎을 꿇고 장료를 살려줄 것을 사정했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칼을 던지고 웃으며 말합니다.

나도 장료가 충의로운 사람임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일부로 장난을 쳐본 것이오.
 

장료.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료.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여러 수법 중 하나가 장난으로 상대방을 떠보는 것이지요. 이 수법에 넘어가지 않아야만 능히 조조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손수 장료의 결박을 풀고 자신의 옷을 입혀주며 성의를 보이자 장료도 감동해 진심으로 항복합니다. 장료는 이후 많은 전투에서 전과(戰果)를 올립니다. 조조는 여포의 처와 딸 및 초선을 잡아 허도로 데려왔습니다. 중국의 4대 미녀 중의 한 명인 초선. 연의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더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출정했던 사람들에게 벼슬과 상을 내렸습니다. 또한, 유비의 공을 헌제에게 알리고 직접 배알하게 했습니다. 헌제는 황실족보를 검토해 유비가 아저씨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유비를 좌장군(左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에 봉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유비를 유황숙(劉皇叔)이라고 불렀습니다.


순욱 이하 조조의 참모들은 유비가 황숙으로 인정된 것은 조조에게 이롭지 못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그가 이미 황숙으로 인정됐으니 내가 천자의 명으로 명령하면 더욱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게다가 나는 그를 허도에 잡아 두고 있으니 명칭은 비록 임금과 가까우나 실제로는 내 손바닥 안에 있는데 무엇이 두렵소?
 
조조는 원술의 친척인 태위(太尉) 양표가 더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원술과 내통하고 있다고 모함해 처단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북해태수(北海太守) 공융이 조조에게 따졌습니다. 조조는 황제가 하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러자 공융이 다시 정곡을 찔렀습니다.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공융. [출처=예슝(葉雄) 화백]

  

성왕(成王)에게 소공(召公)을 죽이게 하고 주공(周公)이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하는 수없이 양표의 관직을 삭탈하고 고향에서 살도록 했습니다. 의랑(議郞) 조언이 조조의 전횡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노한 조조는 즉시 조언을 잡아다가 죽였습니다. 이후 백관들은 모두 조조만 보면 벌벌 떨었습니다.

조조의 위세가 날로 높아지자 모사 정욱은 왕패(王覇)의 업을 이룰 것을 제안합니다. 조조는 아직 고굉지신(股肱之臣)들이 많으니 천자와 사냥을 하면서 그들의 동정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헌제는 조조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어 함께 사냥을 나왔습니다. 유비도 참가했습니다. 헌제는 유비의 활 솜씨를 보고 싶었습니다. 유비는 풀 섶의 토끼를 맞혔습니다. 헌제는 사슴을 향해 화살 세 대를 쐈으나 맞히지 못했습니다. 조조에게 쏘라고 하자 그는 천자의 활과 화살을 달라고 해 한 방에 사슴을 거꾸러뜨렸습니다. 문무백관들은 모두 헌제가 맞힌 것으로 알고 환호를 지르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앞으로 나서서 환호를 받았습니다. 순간, 분위기는 어두워졌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관우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에 조조의 목을 칠 기세였습니다. 유비가 이를 보고 급히 손을 저으며 안 된다는 눈짓을 하자 관우도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유비는 조조에게 몸을 구부리고 칭찬했습니다.

승상의 귀신같은 활 솜씨는 세상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천자의 홍복(洪福)이오.
 
조조는 즉시 천자에게 칭찬하는 말을 했지만 활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유비의 행동이 비굴해 보입니다. 하지만 나관중본에 있는 문장을 살펴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 문장은 이렇습니다.

(유비가 눈짓하자) 관우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조조가 유독 유비 자신만을 바라보자 이에 당황한 유비가 몸을 굽히며 조조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조조가 유비와 관우의 눈짓언어를 날카롭게 살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유비는 이를 감추기 위해 얼른 조조에게 몸을 굽히고 극찬을 한 것이지요.

조조가 천자와 사냥하러 다녀온 장면에 대해서도 모종강의 평이 빠질 수 없습니다.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켜 말(指鹿爲馬)이라고 하면서 누가 자신에게 동조하고 반대하는지를 살폈고, 조조는 허전(許田)에서 만세에 답하면서 대중의 마음이 자기를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를 살폈다. 어쩌면 전후의 일이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활을 빌려 쓰고 돌려주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빌려달라고 했다가 빌려주자 아주 물려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어찌 그런 것이 활뿐이겠는가?
 
모종강 평을 읽다 보면 조조는 매사 나쁜 짓만 일삼는 악인입니다. 유비의 발뒤꿈치도 따르지 못합니다. 조조는 언제나 뭔가를 빌려서 일을 벌이는 자라고 비판하면서 유비가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은 형주에 대해서는 왜 잠잠한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연의에서도 주인공은 조조인 듯 합니다. 모종강의 회평(回評)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 조조이니까요. 다만 유비처럼 착하고 인자하지 않을 뿐이지요.

천자의 혈서를 읽으며 눈물 짓는 동승. [출처=예슝(葉雄) 화백]

천자의 혈서를 읽으며 눈물 짓는 동승.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냥에서 돌아온 헌제는 시름에 빠졌습니다. 조조의 권세가 날로 높아져 목숨까지 위태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헌제는 조조를 처단하기로 마음먹고 혈서를 써서 옥대(玉帶) 안에 넣어 꿰맸습니다. 헌제는 장인인 거기장군(車騎將軍) 동승을 불러 금포와 옥대를 주며 자세히 살펴볼 것을 당부합니다. 동승은 그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조가 조정으로 들어와 동승이 받은 금포와 옥대를 살펴봤습니다. 나아가 이를 갖겠다고 하며 동승을 떠봤습니다. 동승은 위기를 모면하고 집으로 와서 옥대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뜬눈으로 고민하다가 잠깐 잠든 사이 등잔의 심지가 떨어져 옥대를 태웠습니다. 그 안쪽에 헌제의 혈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승은 눈물로 혈서를 읽고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자들을 모았습니다. 시랑(侍郞) 왕자복, 장군(將軍) 오자란, 장수교위(長水校尉) 충집, 의랑(議郞) 오석, 서량태수(西凉太守) 마등까지 모두 6명이 조조 암살 계획에 서명했습니다. 마등은 조정관원 명부를 뒤져 제일 중요한 인물을 찾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유황숙 유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