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료 5분컷' 소아과 '심층상담'에도…"3개월간 1건 미만"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개인병원(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456개로 2017년 521개보다 12.5% 줄어들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개인병원(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456개로 2017년 521개보다 12.5% 줄어들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의 대책 중 하나로 1049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아동 1차 의료 심층상담’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의료기관 당 평균 1건 미만의 심층상담이 이뤄지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을 대상으로 아동 1차 의료 심층상담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소아과 전문의 부족으로 동네 소아과에서 환자가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짧아져 이른바 ‘5분 진료컷’ 상황이 벌어지는 데 대한 대책이다. 이에 정부는 1차 의료기관이 36개월 미만 영유아의 모유수유·영양·발달 등에 대해 15~30분간 심층진료를 할 경우, 수가 약 5만원을 산정해 지급기로 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739개 의료기관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월평균 심층상담 건수는 481건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470건, 2월 557건, 3월 416건 등이다. 복지부는 당초 심층상담을 원하는 부모와 의료진의 수요가 높은 만큼, 환자 1명당 심층상담 횟수를 1년에 3회로 제한하고 의사 1인당 진료를 볼 수 있는 심층상담 환자 수도 250명으로 한정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정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필수의료 지원대책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필수의료 지원대책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뉴스1

 
아동 심층상담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이유로 의료계는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사업이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심층상담을 하려면 환자 보호자로부터 2장 분량의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따로 받아야 하고, 진료 중 심층상담으로 전환하겠냐고 물어야 하는데 현실적이지 않다”며 “상담 후에도 심평원에 상담 내용을 세세히 기재해야 해서 의사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효용성이 없다는 평가다. 서울 마포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여성 A씨는 “상급종합병원 진료비도 2만원 안팎인데 그 비용으로 1차병원을 갈 필요가 있냐”고 지적했다. 현재 동네 의원에 방문해 심층상담을 받을 경우 12개월 미만은 약 2500원, 12~36개월은 약 1만원의 심층상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진찰·검사·처치 비용은 심층상담과 별도로 산정돼, 일반 진료를 볼 때보다 3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 A씨는 “환자와 국민 부담만 늘어나고, 사실상 폐업하는 소아과 의사에 대한 보상정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동 심층상담 프로그램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이에 복지부가 해당 시범사업 기간을 3년이나 잡고 총 1049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서 표류하는 것이다. 서 의원은 “이 사업은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초저출산 시대에, 한 명의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아동건강 심층진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며 “우리 아이의 건강을 우선 고려한 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으로 운용되도록 보다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다듬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재옥(가운데)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아ㆍ청소년과 의료대란 해소 위한 TF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김미애 TF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윤재옥(가운데)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아ㆍ청소년과 의료대란 해소 위한 TF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김미애 TF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최근 소아과 전공의 부족 및 소아과 줄 폐업, 영유아 응급실 뺑뺑이 등 소아청소년 의료시스템 붕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국민의힘은 5일 ‘소아ㆍ청소년과 의료대란 해소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TF 위원장을 맡은 김미애 의원은 이 자리에서 “저체중으로 태어나 응급실 신세를 졌던 초등생 딸을 둔 엄마로서 아이가 아플 때만큼 막막하고 두려운 때는 없었다”며 “내 아이가 아플 때 적기에 치료받을 수 없는 의료공백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