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고립" 신고해도 바닷물 못 피했다…죽음의 한밤 '해루질'

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인근 갯벌에서 해산물을 잡던 20대 여성이 갯벌에 빠졌다가 출동한 해경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인근 갯벌에서 해산물을 잡던 20대 여성이 갯벌에 빠졌다가 출동한 해경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지난 4일 0시쯤 인천시 무의도에서 해루질(밤에 갯벌에서 불빛을 이용해 어패류를 잡는 방식)을 하던 A씨(40대 여성) 등 3명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일행 중 한 명을 구조했지만, 나머지 2명은 실종된 상태였다.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난 4일 낮 12시쯤 실종됐던 A씨 등 2명이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 등은 한밤중 해루질을 하러 갯벌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밀려든 바닷물에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급속하게 차오르는 바닷물 

야간에 물이 빠진 갯벌에서 해루질하다 고립돼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서해안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큰 데가 사리 때는 바닷물이 급속하게 차오른다. 더욱이 야간에는 방향 감각이 무뎌져 손전등 불빛에만 의존해서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오전 3시27분쯤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에서 B씨(60대 여성)가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B씨는 “바닷물이 들어와 갯벌에 고립됐다”고 직접 신고했지만 급속하게 밀려드는 바닷물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화를 당했다. 지난 6일 충남 태안 곰섬 인근에서도 해루질하던 3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숨졌다. 그는 일행들과 해루질을 하다 “물이 가슴까지 차올라서 나올 수 없다”며 구조를 요청한 뒤 연락이 끊겼다. 앞서 3일에도 서산 고파도에서 해루질하던 4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충남 태안의 해수욕장에서 해산물을 잡던 80대 부부가 불어난 바닷물에 빠져 출동한 해경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충남 태안의 해수욕장에서 해산물을 잡던 80대 부부가 불어난 바닷물에 빠져 출동한 해경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늘어나는 해루질...어민들과 다툼도 

더욱 심각한 건 해루질이 늘어나는 추세란 점이다.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이 해양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접수된 해루질 관련 사고는 435건으로 2017년(33건)보다 13배나 급증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에는 해외여행이 중단되고 각종 모임에도 인원 제한이 이뤄지면서 바닷가를 찾아 해루질하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관계 당국은 분석했다. 


일부 관광객들은 어촌계나 주민들이 관리하는 양식장에 무단으로 침입,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자치단체와 관계 당국은 일부 관광객들이 작고 어린 어패류까지 싹쓸이하면서 수산 자원의 씨를 말린다고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17~2021년 5년간 해루질 관련 단속 건수는 352건에 그쳤다. 사고 관련 신고는 급증했지만,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가 늘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무분별한 해루질이 끊이지 않자 충남 서산·태안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수산자원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비어업인이 수산지원을 포획하거나 채취할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과 수량 등을 위반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중앙포토

 

국회, '수산자원 관리법 개정안' 통과 

성일종 의원은 “이 개정안은 비어업인들의 무분별한 수산자원 포획과 채취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지역별로 수산자원 포획·채취에 대한 규정이 다른 만큼 어민들과 상의해서 규정을 적정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경도 사고 위험이 큰 전국 연안의 출입통제 장소 33곳의 관리를 강화하고 해양파출소 순찰도 확대할 받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해루질을 하기 전에 반드시 밀물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전화와 손전등을 챙겨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