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FP가 인터뷰한 중국인 왕 씨는 허난(河南) 성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오전 5시 30분, 중국은행 홍콩(BOCHK) 침사추이 점에 도착했다. 전날 밤부터 서두른 덕에 왕 씨는 은행 앞에 1등으로 줄을 서게 됐다. 오전 9시 은행 셔터가 올라가기 전까지, 왕 씨 뒤로는 60명 이상이 더 줄을 섰다.
시대주보가 인터뷰한 중국인 천 씨는 광저우(廣州)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만에 홍콩에 도착했다. 이후 홍콩의 한 PC방에서 50위안(약 9500원)을 내고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아침 근처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HSBC) 지점으로 달려갔다. HSBC에서 계좌를 만든 천 씨는 곧장 가까운 중국은행 홍콩(BOCHK)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번째 계좌를 만든 뒤, 오후 2시 광저우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천 씨의 이번 여행 목적은 오직 하나, ‘계좌 개설’이었다.

이른 아침 중국은행 홍콩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사진 제일재경
샤오훙수(小紅書)등 중국 SNS에는 ‘홍콩 계좌 개설’ 과 관련된 게시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은행별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 계좌 개설에 소요되는 시간, 본토와 연결된 고속철도 역에서 가까운 지점 등을 정리한 후기 글은 온라인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홍콩 중강청(中港城)에 있는 중국은행 홍콩(BOCHK) 지점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적고 당일날 카드 수령이 가능하다고 소문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샤오훙수에 '홍콩 계좌 개설 공략(香港開戶攻略)'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글들. 사진 샤오훙수 갈무리
홍콩 점령한 중국 ‘예금 특전사’
중국은 소비 진작을 위해 지난 5월 이후 두 차례나 기준 금리를 인하했다. 6월에는 중국 6대 국유은행(공상은행·농업은행·중국은행·교통은행·건설은행·우정저축은행)이 만기 정기 예금 금리를 일제히 인하했다. 이들은 2년 만기 정기 예금 이자율은 2.15%에서 2.05%로, 3년 만기 정기예금은 2.6%에서 2.45%로, 5년 만기 정기예금은 2.65%에서 2.5%로 각각 0.1%p~0.15%p 낮췄다.
반면에 미국 달러에 고정된 홍콩의 금리는 같은 기간 미국과 비슷하게 인상됐다. 홍콩은 1983년부터 통화 가치가 미국 달러 대비 7.75~7.85홍콩달러 범위에서 움직이는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금리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을 계속해서 따르고 있다.

한 홍콩 은행에서 홍콩 달러와 영국 파운드에 적용한다는 우대 금리 광고. 사진 바이두
이와 함께 홍콩에서 저축성 보험에 들기 위해 계좌를 만드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홍콩의 저축성 보험은 통상 본토보다 보장 범위가 넓고 수익률이 높으며, 수혜자와 통화 변경이 간편해 예전부터 인기 있는 투자상품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 당국이 본토의 신규 보험상품 수익률을 3%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며, 홍콩 보험의 인기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홍콩 보험감독기구(Insurance Authority)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홍콩에서 중국 본토 방문객에게 판매한 보험상품은 전년 동기 대비 26배 증가한 96억 홍콩달러(약 1조 6730억원)를 기록했다.
일요일에도 문 여는 은행, 계좌 개설 대행 서비스도 등장
홍콩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선 ‘계좌 개설 대행 서비스’도 나왔다. 중국 매체 시대주보는 “계좌 개설 대행 서비스의 이용료는 약 1000~2500위안(약 19~48만원)이며, BOCHK, HSBC,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등의 계좌 개설을 지원한다”고 전했다.

사진 셔터스톡
이밖에, 대외적으로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어 미국달러·홍콩달러 예금 금리도 얼마 못 가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반면에 일부 전문가들은 위안화가 평가절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본토 중국인들이 위안화를 미국달러나 홍콩달러 예금으로 교환하는 것은 효과적인 헤지수단이라고 평가했다.
권가영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