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레고, 플라스틱 재활용 '친환경 블록' 접는 이유

레고가 음료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 장난감 블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레고가 음료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 장난감 블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장난감 제조업체 레고가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 장난감 블록'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2년여 만에 포기하기로 했다. 환경을 위하겠다며 시작한 프로젝트가 외려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모순을 발견하고 관련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닐슨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재활용 페트(RPET)병을 활용해 장난감 블록을 만들려면 새 공장 설비들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외려 탄소 배출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는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당초 목표와도 어긋난다"고 철회 이유를 밝혔다. 

지난 2021년 6월 레고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블록 시제품을 선보였다. 레고 장난감 블록의 80%가량은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ABS)라는 석유화학 소재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ABS는 가공이 쉽고 단단해서 내구성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ABS의 생산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때문에 레고는 그간 환경 문제에 민감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2021년 레고는 기존의 유성 플라스틱(ABS) 대신 재활용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료로 만든 블록을 선보였다. 레고는 2018년부터 150여 명의 재료공학자와 과학자를 고용해 250여 개에 달하는 친환경 재료를 연구했다. 이 결과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인증받은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료로 만드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1L 플라스틱 페트병을 조각 내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10개 내외의 블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향후 2년 내 '친환경 레고블록'으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중단됐다. 팀 브룩스 레고 지속가능 책임자는 FT에 "폐 플라스틱으로 장난감 블록을 만드는 건 마치 나무로 자전거를 만들려는 것과 같다"며 "기존 플라스틱처럼 단단한 내구성을 갖추기 위해 재활용 페트병에 각종 강화 첨가제를 혼합해 제조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며 처리·건조하는 과정에서 외려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고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모순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버려진 음료 페트병을 재활용해 레고가 지난 2021년 6월 내놓은 장난감 블록 시제품. 사진 레고

버려진 음료 페트병을 재활용해 레고가 지난 2021년 6월 내놓은 장난감 블록 시제품. 사진 레고

 
재활용 페트병을 사용해 종전 생산량만큼 맞추려면 새로운 생산 설비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와 비효율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브룩스는 전했다.

레고는 무리하게 '친환경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이전 계획을 철회하고 '순환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장난감 블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사용(re-use)할지에 방점을 찍는다는 구상이다.  

FT는 "레고의 이 같은 사례는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국내외 기업들은 앞다퉈 친환경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고려 없는 전환으로 크고 작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포장할 때 종이를 사용했으나,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과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중 어느 쪽이 나은 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레고는 친환경 경영에서 상충하는 딜레마를 솔직하게 공개했지만, 일부 기업은 이를 교묘하게 숨겨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란 뭇매를 맞기도 한다. 지난해 세계광고주연맹은 브랜드가 어떻게 환경에 대한 신념, 주장을 소비자에게 신뢰감 있게 전할 수 있는지 6가지 원칙을 담은 가이드북을 내놓으면서 "불리한 정보는 숨기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환경을 위해 고민해온 그대로를 소비자와 솔직하게 소통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