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검진차에서 결핵 검진을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매년 감소하던 결핵 환자 수가 12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령화로 노인 환자가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착용의무가 해지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내년 결핵 예산은 전년 대비 4분의 1가량 삭감돼, 결핵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1~3분기 결핵 환자 신고 건수를 잠정 집계한 결과 환자 1만5451명이 발생해 전년 같은 기간(1만5432명)보다 0.1% 늘었다고 5일 밝혔다. 증가폭이 크지 않지만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전체 결핵 환자 수도 증가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게 질병청의 예상이다. 국내 결핵 환자는 정부의 지속적인 국가결핵관리사업 효과 등으로 2011년 최대치(5만491명)를 찍은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7.9%씩 감소해왔다.
올해 1~3분기 전체 결핵 환자 수가 소폭(19명 증가)으로 늘어난 데에는 고령층 환자의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65세 이상 노인 환자는 지난해 8520명에서 올해 8950명으로 5.1% 늘어났다. 전체 환자 1만5451명 가운데 절반을 넘은 57.9%에 해당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 환자가 지난해 2899명에서 올해 3099명으로 6.9%, 80대 이상 환자는 3946명에서 4255명으로 7.8% 각각 늘었다. 반면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환자가 모두 줄었다.
국내 결핵 환자가 증가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유로는 ▶코로나19 사태 진정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증가 등이 꼽힌다. 질병청은 “마스크 착용 의무 등이 사라지면서 65세 이상이 갖는 모임 빈도가 늘었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의료기관 검사·진단이 줄었다가 다시 정상화된 것도 환자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이성순 일산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핵은 노인 질환이기 때문에 고령화에 따라 환자가 늘어나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며 “잠복 결핵 감염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 전염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6년)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30%가 잠복 결핵 감염자로 추정된다.
발생률 26년째 OECD 1위…내년 예산 24%↓
OECD 국가들의 결핵 발생률. 사진 질병관리청
결핵은 흔히 잊힌 병으로 인식되지만, 현재 진행형인 질병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한국의 결핵 발생률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44명으로 26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2급 감염병인 결핵은 코로나19를 뺀 국내 법정 감염병 중 사망률 1위(21년 1430명)인 병이기도 하다. 질병청 관계자는 “결핵은 성인용 백신이 아직 없고, 치료 기간이 보통 6개월~2년으로 긴 만큼 위험성이 크다. 국가가 5년 단위로 결핵 관리 종합계획을 세워 관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모델로 참여한 2022년 크리스마스 씰. 사진 대한결핵협회
정부는 지난 3월 발표된 ‘제3차 계획(2023~2027년)’에서 결핵 발생률을 2027년까지 20명 이하로 낮출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내년도 결핵 관련 예산은 올해 대비 24.3%(457억원→346억원) 감소했다. 예산 감축으로 결핵 예방·진단·치료 사업 16개 중 15개 사업 예산이 삭감 또는 폐지됐다. 올해 착수한 잠복결핵검진 사업 등 예산이 전액 삭감된 사업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따라 결핵 퇴치를 위해 다년간 펼친 국가적 노력이 퇴행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민간·공공협력 결핵관리사업단장인 박재석 단국대 의대 교수는 “미국이 과거 결핵 관리사업 규모를 줄였다가 1985~1992년 환자 5만2000명이 추가 발생한 전례가 있다”며 “예산을 섣불리 줄였다가 결핵 환자가 다시 증가할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최종현 대한결핵협회 사무총장은 “결핵은 노인의 잠복 결핵 감염률이 높아 찾아가는 검진 등이 필요한데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며 “이대로라면 2027년 결핵 조기 종식이라는 국제사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