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군이 9·19 남북군사합의로 파괴한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고 감시소를 설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군 당국은 27일 밝혔다. 감시소를 설치 중인 북한군 병력. 국방부
실제 군 당국이 이날 지상 카메라와 열영상장비(TOD)로 찍어 공개한 4장의 사진 중 2장을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감시소가 얼룩무늬로 도색됐다. 다른 사진에선 북한군이 경계진지로 무반동총(북한식 비반충포)를 옮기는 장면과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이 각각 식별됐다.

북한군이 GP 내에 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반입한 모습. 국방부
군 당국은 철수했던 11개 GP 전부에서 유사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시소를 시작으로 북한이 사실상 철거 GP 시설을 모두 원상복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측 GP는 산등성이 정상의 감시소 아래 지하갱도가 미로처럼 이뤄진 구조로 돼 있는데, 북한군은 감시소로 남측 동향을 파악하면서 갱도와 경계진지 등에 대한 복구공사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 GP에 야간에도 경계병력이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국방부
GP 철거가 9·19 군사합의 이행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놓고 합의 파기 선언을 행동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국방성은 지난 23일 성명에서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 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북한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하자 완전 파기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GP 복원 움직임은 북한 국방성 성명 이튿날부터 포착됐다.
이에 따라 군 당국 역시 철거 GP를 복원할 가능성이 크다. 김명수 신임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도 (북측의 행동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안 하는 게 바보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례적 대응’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당초 GP 복원 조치는 지나치게 긴장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에 선택지 후순위에 미뤄뒀는데,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서면서 군이 움직일 당위성이 충분해졌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9·19 군사합의 당시에도 GP 철수에 대해 군 내부에선 ‘남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항’이라는 지적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실제 합의 이전 DMZ 내 북한 GP는 160여 개로 60여 개인 남측 GP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파악됐다. 이에 GP 철수가 1대1이 아닌 구역별 비례성의 원칙을 지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군 안팎에서 나왔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우리 측 GP가 북한 측 GP보다 구조의 견고함과 규모 등에서 월등히 앞서는 만큼 1대1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등가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일 북한이 시범철수 대상 GP 폭파 장면에 나선 모습. 지하갱도를 따라 산등성이 80m 길이 구간 폭파가 목격됐다. 사진 국방부
북한의 신속한 행동에는 정치적 목적도 있어 보인다. 한국 내에서 정부의 9·19 합의 효력 정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부 나오는 가운데 이를 노려 긴장을 조성, 남남분열을 꾀하려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이 남측을 상대로 공격적인 행동에 나선 이상 추가 도발도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GP 복원에 이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재무장화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도 군 내부에선 거론된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 후속 조치로 2018년 10월 25일 JSA 내 지뢰 제거, 화기 철수 등 조치를 실시하고 남·북·유엔사 3자 공동검증 작업을 마친 바 있다. 당시 3자 협의체 회의에서 논의된 JSA 내 남북 자유왕래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 같은 비무장화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행위를 예의주시하면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북한의 복원 조치에 대한 대응조치를 즉각적으로 이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