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귀신이 소동을 일으키며 해코지를 하면 온 나라에서 마흔아홉 덩이의 사람 머리와 검은 소 흰 양을 바쳤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풍랑도 가라앉고 해마다 풍년도 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평정을 끝냈소. 어찌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죽일 수 있겠소?
제갈량은 주방 책임자를 불러 소와 말을 잡고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를 넣어 사람 머리처럼 빚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만두(饅頭)’라고 했습니다. 제갈량은 그날 밤 노수에 나와 직접 제사를 지내고 만두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다음날,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노수의 남쪽 기슭으로 갔습니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바람도 없어 물결이 고요했습니다. 촉군은 아무 일 없이 노수를 건너서 성도로 갔습니다. 후주는 제갈량을 성대하게 맞이했습니다. 태평연회(太平筵會)를 베풀고 전군에 상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먼 나라에서도 공물을 바치러 성도로 몰려들었습니다.

만두를 빚어 노수에 제사 지내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편, 조비는 견황후와의 사이에 조예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조예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조비에게 무척 사랑을 받았습니다. 조비는 또 곽영의 딸을 귀비로 삼았는데, 곽귀비는 견부인이 조비의 사랑을 잃자 자신이 황후가 되기 위해 총애하는 신하 장도와 상의를 했습니다. 장도는 조비가 몸이 아픈 것을 기회로 견황후 궁중에서 파냈다며 오동나무로 만든 인형을 바쳤습니다. 천자의 사주와 저주를 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조비는 크게 노하여 견부인을 죽이고 곽귀비를 황후로 세웠습니다. 곽귀비는 자식이 없었기에 조예를 양자로 삼아 아들처럼 키웠습니다.
조예는 15살이 되자 활솜씨와 말솜씨가 능숙해졌습니다. 봄날, 조비는 조예를 데리고 사냥을 갔습니다.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뛰어나오자 조비는 단번에 어미 사슴을 쏘아 죽였습니다. 새끼 사슴이 조예 앞으로 달려가자 외쳤습니다.
얘야! 왜 쏘지 않느냐?
폐하! 이미 어미를 죽였는데 어찌 차마 새끼까지 죽이옵니까?
내 아들이 참으로 어질고 덕 있는 임금이 되겠구나!
조비는 즉시 조예를 평원왕(平原王)에 봉했습니다. 조비의 병세가 점점 더해지고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조비는 조진, 진군, 사마의를 불러 조예를 부탁했습니다. 조비는 재위 7년 만인 4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조예가 황제가 되어 문무 관료들을 승진시키고 대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사마의는 표기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옹주(雍州)와 양주(涼州)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던 터라 사마의가 표를 올려 자신이 지키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예는 즉시 사마의를 옹주와 양주의 군사를 총괄하게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이 깜짝 놀랐습니다.
조비는 이미 죽고 적장자 조예가 즉위했으니 다른 것은 모두 염려될 것이 없으나, 사마의는 지략이 깊은 사람으로 이제 옹주와 양주의 군사를 도독하게 되었으니 만약 훈련을 마치면 반드시 촉에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먼저 군사를 일으켜 치는 것이 낫겠다.
사마의가 비록 위국의 대신이라고는 하지만, 조예는 평소부터 그를 의심하고 꺼려왔습니다. 사람을 낙양과 업성으로 은밀히 보내 그가 모반하려 한다는 유언을 퍼뜨리고, 또 사마의가 천하에 포고하는 것처럼 방문을 여러 곳에 붙여 조예의 의심을 부추기면 반드시 그를 죽일 것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낙향하는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은 마속의 계책을 따라 즉시 시행에 옮겼습니다. 조예가 이를 알고 크게 의심이 들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화흠과 왕랑이 아뢰었습니다.
사마의가 표를 올려 옹주와 양주를 지키겠다고 자청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전에 태조무황제께서 일찍이 신에게 말씀하시길, ‘사마의는 매처럼 노려보고 이리처럼 돌아본다. 병권을 맡겨서는 아니 된다. 오랜 뒤에는 반드시 국가에 큰 화가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모반하려는 정이 이미 싹텄으니 속히 죽여야 합니다.
사마의는 육도삼략에 매우 밝고, 병기도 꿰뚫고 있으며 원래부터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 만약 일찌감치 제거하지 않으면 오랜 뒤에는 반드시 화가 될 것입니다.
대장군 조진이 촉오의 첩자들이 반간계를 써서 자중지란으로 몰아갈 수 있으니 깊이 통찰해야 한다고 말렸습니다. 사마의는 억울한 누명을 쓰자 조예에게 달려와 울면서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화흠이 강력히 반대하자 조예는 그의 말을 따라 사마의의 관직을 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제갈량은 계략대로 사마의가 좌천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자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즉시 후주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전군을 출동시켰습니다. 선봉은 조운과 등지였습니다. 조예도 제갈량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하후연의 아들 하후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섰습니다. 왕랑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안됩니다. 하후부마는 전쟁 경험이 없는데 곧바로 큰 임무를 맡긴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제갈량은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은 데다 육도삼략에 매우 정통하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제갈량과 손잡고 내응이라도 하려는 게 아니오? 나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육도삼략을 배우고 익혀 병법에 정통하오. 당신은 어째서 내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시오? 내가 만약 제갈량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맹세코 돌아와 천자를 뵙지 않겠소.
하후무는 큰소리로 장담하고 장안으로 갔습니다. 20여만 명의 군사를 출동시켜 제갈량과 싸우러 갔습니다. 그의 말대로 제갈량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모종강은 제갈량이 후주에게 출사표를 올리며 눈물을 쏟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서예가 무산 윤인구의 ‘제갈량 출사표’. 허우범 작가
‘제갈량이 북벌을 하면서 남쪽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이것이 무후가 즐거운 것이고, 무후가 밖에서 정벌하면서 끝내 조정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것이 무후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만이(蠻夷)를 평정한 이후 걱정거리는 남쪽이 아니라 바로 후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사표를 보면 “표를 올리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모름지기 위를 정벌하는 것은 위를 정벌하는 것뿐인데 무엇하러 눈물을 쏟겠는가? 바로 이때의 나라 형편은 실로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위급한 처지에 있었고, 후주는 그야말로 취생몽사(醉生夢死)하는 형편에 빠져 있었다. ‘아비만큼 아들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딱 맞는 말임이 이미 증명되었지만 ‘임금만 한 신하가 없다’고 스스로 취한 말이 끝내 참말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이리하여 직접 많은 군사를 이끌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잠시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간곡히 일깨우고 정중히 당부하기를 한 번은 엄한 아버지같이 하고, 한 번은 인자한 어머니같이 한다. 아마 무후가 이날 표를 올리며 눈물을 쏟은 것은 후주에게 매우 난처한 점이 있어서였을 것이고, 한나라 역적과 양립할 수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 사람은 다만 이 표가 역적을 토벌하기 위한 의리 때문인 줄로만 일고 그가 임금을 생각하고 보위하려는 충성 때문인 줄은 모른다. 어찌 무후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