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조성현 PD 인터뷰
정명석 JMS 교주의 여성 신도 성폭행 의혹 등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45) PD가 5시간여의 검찰 조사 다음 날인 지난 18일 울분에 차 내뱉은 말이다.
JMS 등 추적 후 이어진 위협·고소
내부 비호 세력 수사 않는 경찰
공익엔 무신경한 검·경에 절망
지옥 견디는 피해자 누가 살피나
내부 비호 세력 수사 않는 경찰
공익엔 무신경한 검·경에 절망
지옥 견디는 피해자 누가 살피나
그는 해당 다큐에서 'JMS 측이 해외 도피 중이던 정 교주에게 보내기 위해 촬영한 여성 신도들 나체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영했다'는 이유로 성폭력특별법 14조 위반 혐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로 고발당했다. 성 착취 동영상을 만든 N번방 주범 조주빈과 같은 혐의다.
앞서 지난 6월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그를 조사한 담당 경찰은 기자들에게 "(영상 속 여성들의) 침해받은 사익이 (다큐 방영으로) 이루어진 공익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가장 속상했다"고 했다. "고소인 중 정명석 최측근이 포함돼 있던데, 경찰은 (JMS 측 사주를 받아)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이 사람을 이미 피해자로 규정지었더라.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사이비 종교에 빠져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과 그 가족의 삶은 지옥인데, 그들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이런 안이한 판단을 하는 건가. "
화는 났지만, 과거 그랬듯 무혐의 처리될 거라 믿고 내년 7월 방영할 '나는 신이다' 시즌 2 후반 작업 등에 열중했다. 그런데 지난 광복절 날 "기소 의견 송치" 문자를 받았다.
범죄자의 사익 vs 고발자의 공익
처음엔 험한 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사명감으로 눌렀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 관계자들로부터 오는 직접적 위협에 더해 사법적 괴롭힘을 당하고 검·경으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다 보니 이젠 직업적 회의감이 더 크다.
얼굴 가리고 목소리까지 변조하면서 모자이크는 안 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12년 모자이크 처리된 동일한 이 영상이 처음 인터넷에 공개됐을 때 JMS 측은 "(JMS를 고발한) 김도형 단국대 교수가 배우를 사서 찍은 조작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JMS가 촬영했다는 게 드러나자, 이번엔 모자이크 안에 나체 아닌 수영복이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한국에 송환되고, 10년 징역형을 마치고 2018년 출소한 이후에도 계속되는 JMS 교주의 그루밍 성범죄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JMS 측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을 때 영상을 검토한 재판부 역시 일부 삭제나 수정 명령 없이 가처분을 기각했다.
검·경 조사 과정에서 '보고자 동영상' 관련 고발인 중 한 명을 특정할 수 있었다. 정명석 최측근 조직의 대표였다. 사이비 교주 범죄에 동조한 가해자의 사익이 정말 사이비 종교 해악을 고발하는 공익성보다 더 큰 걸까.
우리 사회의 부역자들
어쨌든 A를 특정한 덕분에 대외협력국 B로 연결됐다. 대외협력국은 A 같은 스파이를 JMS에 적대적인 조직에 침투시키고, 문제가 불거지면 누구를 통해 압력을 행사한다는 류의 시나리오를 짜서 실행하는 조직이다. 수장은 육사 출신으로, 현재 증거 인멸 혐의로 수감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A와 B는 '나는 신이다' 제작 당시 홍콩 피해자 메이플이 얼굴을 내놓고 정명석을 고발하는 동영상을 계속 접하면서 스스로 세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B는 본인이 다룬 정보를 외장 하드에 담아 나와 사죄의 의미로 내게 전달했다.
바로 그 파일을 통해 사회 곳곳의 부역자 명단 일부와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JMS 경찰 조직 '사사부'도 그중 하나다. 정명석은 한 강연에서 "사사부에 직접 가입한 경찰이 150명"이라고 했는데, 이 파일로 23명은 확인했다. 이중 주수호(정명석이 내린 가명)라는 서울 서초서 소속 강모 경감은 이미 지난해 12월 정명석 1심 판결문에 노출된 인물이다. 취재 중 JMS 관련 수사에 그가 개입한 녹취를 추가로 확보해 지난 4월 서울경찰청에 청문 감사를 요청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공권력을 국민 아닌 정명석을 위해 쓰는 걸 용납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부패수사대는 6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겨우 소환 조사 한 번 했다.
지난 2006년 JMS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현직 검사와 국정원 직원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여전히 이렇다. 이러니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못 믿겠다, 도와달라"고 나를 찾는 게 아닌가.
가족의 비밀
어릴 적부터 가족은 미스터리였다. 포로수용소에서 헌병과 간호사로 만났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향은 전남 장성과 부산인데, 왜 경기도 부천에 자리 잡았을까. 친척 중 사기꾼은 왜 이리 많을까. 아버지는 대체 왜 몰래 아들 명의 신용카드를 만들고 억대 빚을 져, 아들이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형사 고소할까 고민하게 했을까. 아버지 장례식 날 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를 위해 신도들이 "무슨 대학 졸업"이라며 약력을 읊었을 때 어머니는 왜 "마지막까지 거짓말"이라며 서럽게 우셨을까.
부모 손에 이끌려 그곳에 간 아버지는 부모 강요로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휴거가 곧 오니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거라 짐작한다. 탈출 후 학력을 위조해 대졸이 가는 곳에 취직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졸로 살았다. 아들을 낳은 직후 진실을 알았지만 평생 침묵했던 어머니와 달리, 난 끝까지 속았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다.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 아이 낳을 생각을 안 했는데, 지금 두 아이 아빠가 됐다. 첫 아이(6)를 낳고 보니 자기 자식까지 죽일 수 있는 사이비 종교가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마침 친모 방치 속에 무차별 폭행으로 숨진 사이비 집단 '아가동산'의 최낙귀(당시 5세) 사건을 접하곤, 사건 자체의 잔혹함에 더해 교주의 무죄 선고에 분노해 다큐 제작에 들어갔다. 나를 똑 닮은 딸(3)을 낳은 후엔 사이비 교주의 성 착취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성폭력특별법 피의자 신세다.
할아버지를 궁금해하는 아이에 이끌려 지난 2006년 장례식 이후 17년 만에 아버지 산소에 갔다.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츄파춥스를 산소에 꽂으며 "아빠를 낳아줘서,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장면 하나로 아버지와 화해했다.
사이비 종교 피해자였던 아버지를 용서하기도 이렇게 어려웠다. 하물며 현재진행형인 피해자들은 어떨까. 검·경은, 사법부는, 아니 우리 사회는 그런 고통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