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세상, 속 시원하게 '뻥'…전국민 웃기고 간 '원조 욕쟁이' [김수미 별세]

25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수미. 특유의 입담과 순발력으로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5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수미. 특유의 입담과 순발력으로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재치있는 입담으로 전 연령층에서 인기를 끈 배우 김수미가 25일 별세했다. 75세. 지난 5월부터 건강이 나빠져 휴식과 활동을 반복해 왔던 그는 이날 오전 8시쯤 심정지 상태로 서울성모병원에 이송됐다.

아들인 정명호 나팔꽃F&B 이사는 “경찰이 고혈당 쇼크사가 최종 사인이라고 알렸다. 당뇨 수치가 500이 넘게 나왔다”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밝혔다. 고혈당 쇼크는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해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이다.

고인은 1949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데뷔 초엔 이국적이고 개성 강한 미모로 눈길을 끌었으나 당시 사회가 선호하는 외모가 아니라는 평을 들으며 긴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1980년부터 방영한 국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라는 인생캐릭터를 만났고, 22년 동안 열연했다. 김수미는 "29세의 어린 나이에 할머니 역을 제안받고 화가 나기도 했으나, 오기가 생겨 배역에 몰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왕이면 작가 선생님이 원하는 노인을 제대로 보여주자”며 연신내 시장에 가서 할머니들을 보고 연구해 캐릭터를 히트시킬 수 있었다. 또한 1986년 MBC ‘남자의 계절’에서도 배우 최명길의 친정엄마 역할을 맡아, 조연임에도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MBC 연기대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걸쭉한 사투리의 ‘욕쟁이’ 캐릭터로 시트콤·예능·광고를 휩쓸었다. 2005년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 2006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2011년 영화 ‘사랑이 무서워’, 2013년 드라마 ‘돈의 화신’, 2015년 영화 ‘헬머니’에서 ‘욕쟁이 할머니’로 활약했다. 예능 러브콜도 이어졌다. KBS2 ‘나를 돌아봐’, KBS2 ‘수미산장’,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와 지난 9월 종영한 tvN 스토리 ‘회장님네 사람들’까지 출연했다. 


요리 실력으로도 정평이 나 김치, 게장, 젓갈 등을 제조·판매하는 나팔꽃F&B를 설립했고, 2018년엔 tvN ‘수미네 반찬’에서 셰프들의 집밥 선생님으로 출연했다. 화면 바깥에서도 동료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연예계의 요리 대모’로도 불렸다. "손이 커서 한 달 도시가스비만 90만원이 나올 정도고,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의 지인 반찬까지 챙겼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김수미는 “18세에 떠나보낸 엄마 손맛이 그리워서 요리하기 시작한 것이 사업이 됐다”고 했다. 김수미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뮤지컬 ‘친정엄마’ 무대에 오르면서 해소했다. 2009년 초연부터 올 4월까지 15년간 극 중 엄마 역으로 열연해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인터뷰에서는 “건강만 허락하면 죽을 때까지 (연기) 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하지만 아들 정명호 이사는 2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어머니는 뮤지컬 ‘친정엄마’의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며 "작품의 표절 시비로 출연료 지급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친정엄마 역을 연기하는 김수미(오른쪽). 그는 "딱 우리엄마 모습"이라고 했다. [사진 Show21]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친정엄마 역을 연기하는 김수미(오른쪽). 그는 "딱 우리엄마 모습"이라고 했다. [사진 Show21]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1986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2011년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2013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 2015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부문 우수상, 2018년 대한민국 한류대상 대중문화 특별공로대상 등이 있다.        

고인은 지난 9월 홈쇼핑에서 건강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부은 얼굴에 손을 떨고 말투가 어눌하다”는 시청자 댓글에 정명호 이사는 당시 “피로 누적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후 건강은 괜찮다”고 언론에 밝혔다. 김수미와 ‘회장님네 사람들’을 함께 했던 방송 관계자는 2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스케줄이 많아 녹화하며 힘들어하실 때는 있었지만, 대체로 건강해 보이셨다. 최근 통화할 때까지도 평소의 목소리였다”라고 전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스타를 잃었다기 보다는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슬픔"이라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신 김수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애도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유 장관은 김수미와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창규,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 며느리이자 배우 서효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