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 파병에 대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두마)이 전날 해당 조약을 비준한 만큼 북·러 조약을 근거로 뒤늦게 북한군 파병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작업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 로시야1의 '60분' 인터뷰에서 북·러 조약 4조에 상호 군사지원과 관련된 내용 담겨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이 조항을 어떻게 다룰지가 문제로 남아 있다"며 "우리는 북한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분명히 결정할 것이며 북한의 친구들도 상응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의 주권적 결정"이라며 "우리가 무엇을 적용할지 말지, 어디서 어떻게 적용할지, 그것이 필요한지, 예를 들어 일부 훈련을 시행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제한해 참여할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북한도 즉각 러시아와의 '발맞추기'에 나섰다. 김정규 러시아 담당 부상은 이날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그것을 불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싶어 하는 세력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며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외무성은 국방성이 하는 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또한 이에 대하여 따로 확인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러 조약의 비준·발효를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파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여론화된 상황 때문에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라며 "국제법적 규범이란 건 주권 국가 간의 조약을 이행하는 차원이라는 점을 강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 당국이 외부 정보 유입이나 주민들 간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는 점을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19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이 조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 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without delay)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with all means in its possession)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shall provide)"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는 지난 7~8일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지만 조약의 비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국무위원장(김정은)이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조약을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김정은 독단으로 조약을 비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러 양국이 조만간 외교채널 등을 통한 비준서 교환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약이 발효된다면 북·러 양측은 이를 근거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빌미로 양국 간 조약에 따른 군사 원조를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후에 파병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이 27~28일 전장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에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으로부터 북한군 개입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며 "정보기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10월 27~28일 북한군을 전투지역에 처음 배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는 명백한 확전 움직임"이라며 서방 지도자들을 향해 러시아와 북한 모두에 실질적인 압력을 가해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