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5일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9일 앞둔 27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선과 행보가 180도 상반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최대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주를 찾아 흑인 유권자 등 ‘집토끼(고정 지지층) 단속’에 나섰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대규모 유세 집회를 열어 세를 과시하며 ‘산토끼(부동층) 사냥’에 나섰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 최대 도시이자 민주당의 아성인 필라델피아를 찾아 흑인 교회, 이발소, 서점, 기념품점, 푸에르토리코 식당등을 훑으며 지지층의 적극적인 투표를 독려했다.
해리스는 일요일인 이날 한 흑인 교회 예배에 참석해 “우리 자녀와 미래를 위해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혼돈과 공포, 혐오의 나라인가. 자유와 정의, 연민의 나라인가”라고 물으며 지지를 호소했다. 예배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펜실베이니아는 의심의 여지 없이 (대선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Democratic presidential nominee Vice President Kamala Harris speaks during a community rally at the Alan Horwitz "Sixth Man" Center, Sunday, Oct. 27, 2024, in Philadelphia. (AP Photo/Susan Walsh)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7대 스윙스테이트(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 승패를 가를 핵심 승부처로 꼽힌다. 필라델피아 등 도시에선 민주당이 강세지만 교외 지역과 농촌에선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해리스 입장에선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에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ㆍ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의 투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해리스가 흑인 역사 전문 서점을 찾아서 “승리는 필리(필라델피아)로 통한다”며 투표 참여를 거듭 독려한 것도 그래서다.
해리스는 이날 오후 필라델피아 실내 체육관에서 가진 유세에서도 펜실베이니아 사전투표의 29일 종료를 상기시키며 “지금이 바로 사전투표를 해야 할 때다. 선택은 여러분 손에 달렸다”고 역설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아성인 뉴욕시에서 수천 명이 참석한 집회를 열고 세몰이를 했다. ‘적진’ 한복판에서 전당대회급 대형 이벤트를 연 것은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상승세인 기세를 몰아 민주당에 실망한 무당파ㆍ부동층까지 껴안는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됐다.
트럼프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유세 행사에서 “여러분의 투표로 11월에 우리는 미국을 구할 것”이라며 “여러분이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무당층이든 간에 ‘마가’(MAGAㆍ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에 대한 동참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해리스에게 ‘당신은 미국을 파괴했다. 당신은 해고’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27일(현지시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했을 뿐 공식 유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이날 뉴욕 집회에 참석해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지도자를 배출했고 그들의 업적은 세계의 흐름을 바꿨다”며 뉴욕 출신의 남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당부했다.
이날 오후 5시쯤 시작된 행사에는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과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차남 에릭 트럼프 부부, 보수 논객 터커 칼슨, 이종격투기(UFC) 대표 다나 화이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이 찬조 연설자로 나와 마치 전당대회를 방불케 했다. 머스크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큰 격차로 승리해야 한다”며 “경합주는 물론 경합주로 생각되지 않은 주에서도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을 미리 치르는 것 같은 축제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지지 연설을 한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바다 위 쓰레기 섬”이라고 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이 잇따라 논란이 됐다. 해리스를 “악마” “반그리스도”라고 했고 흑인ㆍ라틴계ㆍ유대계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이어졌다.
해리스 대선 캠프는 즉각 ‘트럼프 집회에서 나온 모든 미친 짓들’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트럼프가 평소 해온 인종차별적 언행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놀랍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성명을 통해 “이번 농담은 트럼프나 대선 캠프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방어막을 폈다.
두 후보를 둘러싼 판세는 여전히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다. 이날 공개된 ABC 방송 여론조사(18~22일 전국 성인 2808명 대상) 결과 해리스와 트럼프 지지율은 각각 49%, 47%였다. 투표 의향 응답자 중에선 해리스가 51%로 트럼프(47%)와의 격차를 4%포인트로 벌렸다. 이달 초 같은 조사에서는 2%포인트였던 격차가 다소 늘어난 결과다.
같은 날 공개된 CBS 방송 여론조사(23~25일 전국 2161명 대상)에서는 투표 의향 응답자의 50%는 해리스를, 49%는 트럼프를 찍겠다고 했다. 지난 9월 대선 후보 TV 토론 뒤 CBS의 전국 단위 조사에서 해리스는 4%포인트 격차로 앞섰는데, 1%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한편 밴스 의원은 이날 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강력하기를 원한다. 미국이 나토에 남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선하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밴스는 “트럼프는 나토 국가들이 실제로 방위비 부담은 분담하기를 원한다”며 부인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