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名馬)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삼국지엔 관우의 적토마(赤兎馬), 유비의 적로(的盧), 장비의 옥추(玉追), 조조의 절영(絶影) 등등 여러 명마가 등장한다. 이 외에도 중국 첫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桓公)의 명마 불운비(拂雲飛)가 유명하다. 항우(項羽)의 오추마(烏騅馬)도 있다.
이번 사자성어는 백락상마(伯樂相馬. 맏 백, 즐길 락, 살필 상, 말 마)다. 첫 두 글자 ‘백락’은 본래 고대 중국인들이 천마(天馬)를 주관한다고 여긴 신선의 이름이자 한 별자리의 명칭이었다. 다음으로 ‘상마’는 ‘말을 살피다’란 뜻이다. 한자 상(相)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살피다, 관찰하다’라는 두 번째 뜻으로 쓰였다. 여기에선 ‘서로’를 뜻하지 않는다. 따라서 ‘백락상마’는 백락이 말을 살펴보고 우열을 품평하다’란 의미다. 요즘에는 ‘귀한 인재를 알아보거나 추천하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다.
손양(孫陽)은 진(秦)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상마가(相馬家)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선택하거나 추천한 말은 늘 명마였다. 사람들은 그를 본명이 아닌 백락으로 호칭하며 우대했다. 구체적 생몰 연대를 확정할 수 없으나 백리해(百里奚)를 재상으로 발탁한 목공(穆公)과 동시대 인물이다.
손양의 행적과 관련된 일화들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목공이 손양에게 명마가 아니고 아예 유능한 상마가 추천을 명했다.
“친구 중에 가난하지만 말을 잘 보는 이가 있긴 한데요. 저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이렇게 손양은 구방고(九方皐)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목공은 내심 손양이 자식이나 제자를 추천할 것으로 기대했다. 손양이 뜻밖에 가난한 친구를 소개하자 못 미더웠지만, 시험 삼아 구방고에게 천하를 뒤져 명마 한 마리를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겨본다.
“노란 털을 가진 암말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구방고가 돌아와 이렇게 보고했다. 목공이 급히 사람을 파견해 그 말을 데려오게 해서 살펴보니 털은 검고 숫말이었다.
실망한 목공이 구방고를 내보내고 손양을 따로 불러 질책했다. 누가 봐도 손양이 경쟁자를 원치 않는 것이라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목공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손양은 하늘을 향해 혼잣말한다. “아, 구방고가 드디어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렀구나. 그는 말에서 보아야 할 것에만 집중하고, 보지 않아도 무방한 것은 안 본 것이다. 사실 말의 색깔이나 암수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 알쏭달쏭한 말을 듣고 목공이 조금 시간을 갖고 지켜보니 과연 구방고가 추천한 그 검은 털의 말은 천하의 명마 가운데 하나였다.
또 다른 일화에는 손양의 말 고르는 경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루는 인접한 초(楚)나라 왕이 손양에게 명마 한 마리를 추천해 달라고 의뢰했다. 손양이 임무 수행을 위해 돌아다니다가 한 소금장수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의 소금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은 외견상 마르고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손양은 이 말이 천리마라는 것을 바로 식별할 수 있었다. 측은지심에 손양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말의 잔등을 덮어주자 그 말도 우렁찬 소리로 호응했다.
손양은 그 자리에서 소금장수와 흥정을 마치고 그 말을 초왕에게 데려가 인도했다. 말을 보자 초왕은 당연히 실망했다. 하지만 손양의 명성을 믿고 ‘말을 잘 먹이라’ 명령하고 기다려본다. 며칠 후 확인하니 과연 천리마였다. 그가 충동을 못 이기고 말에 오르니, 바로 출발해 천 리를 질주했다.
세상에 천리마는 늘 있다. 다만, 백락이 흔치 않을 따름이다.
‘당송 8대가’를 대표하는 한유(韓愈)는 이런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인공지능(AI) 시대일수록 인재를 알아보는 이가 진짜 고수다. 그런 인공지능까지 등장하면 향후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