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당시 유임했던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 육군 군단장급 지휘관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역할을 맡게 됐다. 이에 따라 11·25 인사가 비상계엄을 염두에 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사전 포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 사령관, 이 사령관, 곽 사령관은 모두 김 전 장관과 개인적으로 잘 안다는 사실이 이 같은 분석의 근거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신원식 대통령실 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이었던 8~9월께 이들 중 일부를 옮기는 인사안을 그려놨으나, 김 전 장관이 9월 부임하자마자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짰다”고 말했다.
여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충암고등학교 후배다. 여 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실에 근무하던 2017년 ‘영웅담 조작 사건’으로 힘들어 하는 김용현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3성)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김 전 장관은 제17 보병사단장 시절 단순 익사자를 동료를 구하려다 숨진 영웅으로 포장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무고로 판결했다. 그러나 여파로 김 전 장관은 별 네개를 달지 못했다.
이 사령관은 여 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48기 동기다. 두 사람은 같은 육사 생도중대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친분을 쌓았다. 곽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합참 작전부장(2성)으로 함께 근무했던 실무 장교였다.
11·25 인사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그대로 남은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정보사 군무원 기밀 유출 사건과 여단장 항명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는 하반기 인사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녔다. 그리고 결과는 그의 장담대로였다.
배경엔 경찰이 15일 내란 혐의로 긴급체포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있었다. 노 전 사령관은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김 전 장관이 전화로 찾던 인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계엄령 포고문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육사 3년 선배인 김 전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비서실에서 인연을 맺었다. 정보 병과로 국가정보원 파견 경력이 있는 그는 시중 정보를 취합해 보고서를 만들며 김 전 장관의 눈에 들었다. 2018년 성추행 사건으로 옷을 벗은 뒤 “지리산에 도 닦으러 들어간다”고 주변에 얘기했지만,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들렸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 조사에서 김 전 장관과의 잦은 통화에 대해 “김 전 장관이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어봐 내 의견을 줬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문 사령관을 김 전 장관에게 추천했고, 그에 대한 구명 로비도 벌인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11·25 인사 직후 정진팔 교육사령관과 김봉수 합참차장이 자리를 맞바꾼 육군의 ‘원포인트 인사’도 입방아에 올랐다. 김봉수 전 차장은 취임 두 달도 안 된 11월 28일 이임했다. 정진팔 차장은 지난 2일 취임했고, 다음 날인 3일 정 차장은 계엄부사령관을 맡았다.
군 일각에선 김 전 장관이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자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엄사령부에 믿을 만한 사람을 두고 싶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 차장은 김 전 장관과 근무연이 있다. 김 전 장관이 제9 보병사단 작전참모였을 때 밑에서 일했다. 당시 동료가 여 사령관이었다.
김 전 차장은 올해 5번째 보직이 바뀐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올해 초부터 3군단장→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합참차장→교육사령관에 이어 12일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로 임명됐다.
이처럼 비상계엄의 핵심인 ‘김용현 라인’은 김 전 장관과 같이 근무한 경력으로 엮여있다. 그리고 김 전 장관의 고교·육사 후배이면서 가장 신뢰하는 여 사령관을 고리로 확장할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예비역 장성은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때부터 군 인사에 관여하면서 자기 사람을 요직에 심어뒀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면서 “실력보다는 연줄로 출세할 수 있도록 방관한 국방부와 군 지휘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