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훈이" 윤·한 20년…가장 불운한 보수 1·2인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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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기자 사진 허진 기자
지난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만나 회동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지난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만나 회동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여권을 권력의 진공 상태로 몰아넣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지 이틀 만인 1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직을 내려놨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핵 찬성’에 대해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참 고통스럽다”는 그의 말처럼 ‘탄핵 반대’ 당론을 거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탄핵안 가결 후 국민의힘 내 다수인 친윤·비한계 의원은 그 책임을 한 대표에게 맹렬히 물었다. 탄핵 직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고, 선출직 최고위원이 줄사퇴하면서 “더는 당을 이끌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윤 대통령은 부인하고 있지만, 계엄 때 체포 대상자 명단에 한 대표가 있었다는 진술이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대표는 12·3 사태 직후인 4일과 6일 윤 대통령을 직접 대면했지만 정국을 풀어낼 만한 진전은 없었다. 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믿고 무슨 타협을 하고 약속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우리 동훈이”라고 부르며 문재인 정부 말기 때는 ‘독립운동을 한 동지’에 빗댈 정도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전,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흔들렸다. 수직적 상하 관계에 익숙한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뒤에도 ‘직속 부하’로 여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한 대표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한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주변에 “윤 대통령과 나는 이미 사사로운 관계를 떠나 역사 속 관계가 됐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각자 해야 할 일,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하곤 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동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거였겠지만, 한 대표는 총선을 “내 선거”라는 관점에서 치렀다. 이런 그림을 예견했던 한 여권 인사는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동훈 비대위원장’부터 막아야 했는데, 그게 참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이미 이렇게 생각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개개 현안에 관해 충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건희 특검법을 비롯한 김건희 여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총선 공천 때 각자의 지분을 얼마만큼 인정할지 등은 당연히 뒤따르는 갈등 요소였다.

이런저런 갈등이 중첩되면서 두 사람은 비대위원장직을 놓고도 맞붙다시피 했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문제로 충돌하던 지난 1월 21엔 윤 대통령이 이관섭 당시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한 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 지난 4월 1일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할 때는 한 대표도 “담화문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지 않으면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복수의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1차 윤·한 갈등 직후인 지난 1월 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1차 윤·한 갈등 직후인 지난 1월 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그러다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김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까지 겪으며 한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 회복 불가 상태였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응당 해야 할 독대 여부조차 논란이 될 정도로 신뢰를 상실했다.

두 사람이 쌓인 감정을 사석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그 사람”이라고 칭했다는 얘기나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살모사 같다”고 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 퍼져나갔다. 두 사람 사이를 잘 아는 인사는 “비대위 때부터 이미 두 사람의 신뢰가 깨졌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20년 넘도록 교분을 맺어온” 두 사람은 결국 권력 앞에 갈라져 서로 큰 상처를 입혔다. 여권에선 두 사람이 2012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처럼 정치적 타협을 해내길 바랐다. 하지만 극한 갈등으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보다 못한 관계로 귀결됐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결과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 진영에서 가장 불운한 1ㆍ2인자 관계로 남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