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A씨(43)는 연말 대목에도 활짝 웃지 못하고 있다. 1년 전에 비하면 12월 매출이 3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12월은 특수한 달이라 평일 낮, 주말 저녁 예약이 꽉 차는 편이었는데 이게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작년에도 경기가 안 좋았는데 이제 정말 바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바짝 벌어서 1~2월 비수기를 버티는 건데 매출은 떨어지고 대출 이자 부담은 여전해 걱정”이라며 “인근 음식점 중에 폐업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 한파에 누적된 이자 부담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금리 인하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12ㆍ3 비상계엄 이후 소비심리까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저소득이거나 저신용인 다중채무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로 치솟았다. 2022년 2분기(3.96%)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다 두 자릿수 연체율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2013년 3분기(12.02%) 이후 최고치인데다 역대 최고치(2012년 3분기 13.98%)에 근접한 수치다.
취약 자영업자가 왜 늘었는지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9월 말 기준 가계소득 하위 30%인 저소득 자영업자는 49만4000명, 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저신용 자영업자는 23만2000명으로 올해 들어 각각 1만5000명, 3만2000명 증가했다. 중소득ㆍ중신용 이상이던 자영업자 차주들이 저소득ㆍ저신용으로 하락한 경우가 각각 2만2000명, 5만6000명으로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기존의 저소득ㆍ저신용 자영업자들이 신규 대출을 더 늘린 게 아니라 내수 부진으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진 자영업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계엄ㆍ탄핵 정국으로 촉발된 정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한번 움츠러든 소비 심리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의 앞길이 앞으로도 가시밭길이라는 의미다. 한은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 폭 하락이다. 이 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향후 경기에 대한 인식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으로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했는데, 이달 초 비상계엄 사태가 지수 하락 요인으로 추가됐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해소되고 안정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소비심리 회복 속도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수출 둔화에 따른 경기 악화, 소비 부진 흐름이 이어질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자 장사’ 비판을 받아 온 은행들은 앞으로 3년간 2조원을 투입해 연체 가능성이 큰 소상공인 25만명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밝히는 등 긴급 처방을 내놓고 있다. 다만 취약 자영업자들이 지나치게 빚에 기대어 사업을 이어가지 않도록 ‘옥석 가르기’를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회생 가능성이 낮은 일부 취약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채무조정과 재취업 교육 등 재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여파가 이어지면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건전성 관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핵심 건전성 지표인 고정이하여신(NPLㆍ전체 대출 중 회수가 불확실한 대출) 비율을 보면 저축은행은 10.56%, 상호금융(농ㆍ수ㆍ신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은 6.63%로 지난해 3분기(각각 5.89%, 3.91%) 대비 큰 폭 상승했다.
차주별로 보면 올해 들어 가계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크게 늘었다. 저축은행은 9.97%, 상호금융은 15.86%로 1분기 대비 각각 2.76%포인트, 2.67%포인트 상승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이자이익은 소폭 줄고 부실채권 증가에 따른 대손상각비는 늘면서 비은행들의 수익성은 전년보다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