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망하면, 창업자는 어디까지 책임져야할까.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3명 중 1명은 투자자로부터 회사에 대한 연대책임 조항을 투자계약서에 쓰도록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창업자 회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11월 14일~20일)한 결과, 36%가 “투자 계약 시 연대책임을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26일 밝혔다. 코스포는 창업자들이 연대책임 조항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됐고, 법적 분쟁, 재정적 압박 등의 피해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응답자의 78%는 ‘연대책임이 창업 활동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94%는 ‘연대책임을 금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대책임이 금지될 때 기대 효과(복수 응답)로는 ‘창업 의지 상승’(84%), ‘창업자의 자산 보호’(45%), ‘무리한 투자 유치 시도 감소’(24%) 등을 꼽았다.
이번 설문은 지난달 국내 스타트업계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어반베이스 사태’를 계기로 기획됐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는 지난해 12월 경영상 어려움이 커 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했다. 그런데 회사 투자사 중 한 곳인 신한캐피탈이 투자원금 5억원과 이자 7억원을 합산해 약 12억원을 회사에 상환 청구(올해 2월)했다. 이어 9월에는 연대보증인으로 설정한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 자택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신한캐피탈과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인 하 대표가 지난달
개인 블로그에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스타트업계 화제가 됐다.
업계에선 갑론을박이 오갔다. 말 그대로 ‘모험(venture) 자본(capital)’ 투자자인 신한캐피탈이 피투자사의 대표 자택까지 가압류를 신청한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편에선 연대보증 조항이 명시된 투자 계약서에 양측이 서명했다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자기의 살아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왜 문제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스타트업 투자 계약서에 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 조항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위원장인 민병덕 의원이 지난달 신한캐피탈 측에 원만한 해결을 요구했다. 당시 신한캐피탈은 “연내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답했지만, 양측의 민사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로 스타트업 투자의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다. 2023년 4월 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벤처기업법)’은 벤처투자조합이 피투자사에 연대 부담을 지우는 행위를 법적으로 제한했다. 연대보증 조항이 창업 생태계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에만 해당되는 법령이다. 금융위원회 소관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인 신한캐피탈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월 25일 서울 강남구 글로벌스타트업센터에서 '컴업 2024' 주요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연대보증 금지 조항을 전 업권에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구태언 코스포 법률지원단장은 이날 “벤처캐피털이 창업자 개인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회수하는 등 벤처투자의 본질에 어긋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선 연대책임 조항을 삭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열린 스타트업 행사에서 “현재 벤처투자가 확실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대책임 금지 조항을 신기사까지 확장할 경우 투자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