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모습. 글로벌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내년 1월 수출은 이번달에 비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뉴스1
철강업체 A사는 내년 1월 종합경기를 비롯해 내수·수출·투자·자금사정·고용·채산성·재고 등 경기를 전망하는 8개 항목 모두를 이번달에 비해 부정적이라고 내다봤다. A사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과잉에 더해서 환율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아 원재료 비용 부담과 수익성 악화가 버거울 정도”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기업 B사는 같은 항목 중 고용만 올해와 같은 수준이고 나머지는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과 중동이 저렴한 생산단가를 앞세워 저가 물량 공세를 하는데 도저히 싸울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장을 매각하고 싶어도 사줄 곳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복합 위기를 맞은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역대 최장인 ‘34개월 연속’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들이 탄핵 정국 이후 국정 공백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한달 만에 급락했다. 여기에 기업 10곳 중 7곳은 내년도 노사관계가 올해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예측하며, 내년도 기업 경영 환경에 먹구름이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BSI를 조사한 결과 내년 1월 BSI 전망치가 84.6을 기록했다고 26일 밝혔다. 코로나 이후로 34개월 역대 최장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달(97.3)에 비해 한달 만에 12.7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충격파가 반영된 2020년 4월(25.1포인트 하락)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BSI는 2022년 4월(99.1) 두자릿수 대로 떨어진 뒤 34개월 연속 100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수치가 100보다 낮으면 기업들이 전월 대비 부정적으로 경기를 전망한다는 의미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내년 1월 경기 전망이 어두웠다. 제조업의 BSI는 84.2, 비제조업은 84.9로 나타났다. 조사 부문별로는 내수 88.6, 투자 89.4, 고용 90.0, 수출 90.2, 자금 사정 92.1, 채산성 94.0, 재고 104.9 등 7개의 모든 항목에서 부정적으로 전망됐다. 재고는 기준선 100을 넘으면 재고 과잉으로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1975년 1월 BSI 조사를 시작한 이래 50년 만에 역대 최장 연속 부진을 기록하고 있다”라며 “특히 이번 조사는 계엄 후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가결한 지난 12~19일 진행한 조사로, 기업들이 느끼는 정국의 불확실성이 그대로 반영된 데 더해 미국 트럼프 신정부 등 대외환경 변화까지 겹치며 우려가 커진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6일 15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노사관계 전망 조사’ 결과, 이들 중 69.3%는 내년 노사관계가 더 불안할 것으로 이날 전망했다고 이날 밝혔다. 내년 노사관계가 올해보다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은 2.7%에 불과했다. ‘다소 더 불안’은 53.3%, ‘훨씬 더 불안’은 16%였다. 노사관계가 불안할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조사(62.3%)보다 더 높아졌다.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전망하는 요인의 절반 이상은 정년 연장 등 다양한 노조의 요구(59.6%)를 꼽았다. 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구조조정 관련 투쟁 증가(18.3%), 노동계의 정치 투쟁 증가(10.6%) 등이 뒤를 이었다.
임금 및 복리후생을 제외한 임단협 주요 쟁점으로는 정년 연장(34.6%), 고용안정(19.5%), 조합 활동 확대(11.9%), 인력 충원(10.1%) 등이 많이 거론됐다. 경총은 내년에도 경기침체 예상으로 산업현장에서 구조조정 관련 갈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내년 추진해야 할 주요 노동 정책으로는 근로 시간 운영의 유연화가 전체의 32.4%로 가장 먼저 꼽혔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